메르스 촉발 병원들 진료정보 공유 가능할까
통합·공유 시스템 10년 전 연구·개발 성과 나왔으나 실제 구축 '지지부진'
2015.10.15 10:00 댓글쓰기

[기획 4]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10년 넘게 진전이 없는 병원 간 진료정보 공유의 불을 다시금 지핀 모양새다. 병원 간 환자 정보를 공유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메르스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 환자의 진료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메르스가 일파만파로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메르스 이후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진료 의뢰 수가를 신설하고 진료정보 교류시스템 구축 및 의료진 간 진료 협력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진료정보 공유시스템 구축 논의는 지난 2005년이 출발점이었다. 관련 연구도 활발히 진행돼 기술적으로는 전 국가적 EHR(전자건강기록) 구축이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매번 의료단체와 법적 한계에 부딪혀 실제 구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메르스로 인해 필요성이 대두된 진료정보 공유가 이번에는 가능할 지 추이가 주목된다.


“EHR 도입됐었다면 삼성서울 수퍼전파 비극 막아”


순식간에 70여명을 감염시킨 14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할 당시 평택성모병원과 평택굿모닝병원에서 진료 받은 기록을 병원에 제시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격리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진료기록으로는 1번 환자와 같은 병동에서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병원 간 진료정보 교류가 적절히 이뤄졌었더라면 수퍼 전파를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병원 간 진료정보 교류는 EHR을 근간으로 한다. EHR은 각 병원의 EMR(전자의무기록), OCS(처방전달시스템)·PACS(의료영상전송시스템) 등 병원정보시스템(HIS)을 네트워크로 통합해 공유하는 기술이다. 각 병원 별로 개별 관리되고 있는 진료기록을 표준화 해 상호 호환성을 높이는 기술이 필요하다.


EHR이 구축되면 의료진은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에서도 환자의 기저질환 등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게 된다.


환자 역시 큰 병원으로 옮겨갈 시 이전 기관에서 발급한 진료정보를 복사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피하고 중복 검사나 투약에 따른 낭비와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번 메르스 사태와 같이 정보의 빈틈으로 인한 재앙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HR은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덴마트, 포르투갈 등 선진국을 주축으로 최근 3~4년 사이 급속 도입 및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러시아, 브라질, 슬로베니아,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개발도상국들도 도입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등이 적극적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오바마케어’ 정책이 도입되면서 의료비 지출 감소를 위해 2013년도에 전체 병원의 78%가 EHR을 도입해 의료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EHR 도입은 이미 여러 번 시도됐었다. 정부는 지난 2005년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보건복지부 산하에 의료정보화사업추진단(정보화추진단)을 꾸리고 EHR핵심공통기술연구개발사업단(EHR)을 출범시켰다.


당시 이 사업에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30여개 대형병원을 비롯해 KT, 삼성SDS, LG CNS, SK C&C, 현대정보기술, 한국 HP, 인텔코리아, 이지케어텍, 인피니트테크놀로지 등 21개 기업 참여했다.


각 병원과 개발업체에 따라 차이가 있는 EMR과 전산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 소형병원부터 대형병원까지 임상 정보를 문제없이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였다.


5년여의 연구 끝에 성과가 도출됐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사업성 낮다는 의견을 내면서 추진에 적신호가 켜졌다.


결국 지난 2009년 복지부 내 정보화추진단은 해체됐고, EHR 사업단 역시 그동안 연구 결과 발표한 것을 끝으로 2010년 해산됐다. 이후 부처를 옮겨 지난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글로벌전문기술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국제표준규격 EHR 시스템이 개발됐다.


당시 EHR 사업단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임상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과가 창출됐고 선진국인 미국과 비교해도 기술적으로 손색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법적인 한계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전자건강보험증, 국가적 진료정보 공유 플랫폼 설계 등 재시동

 

하지만 메르스로 진료정보공유시스템 부재에 따른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정부는 다시 진료정보 교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복지부는 진료의뢰 수가 신설을 선언했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의료전달체계를 재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병원 간 진료정보 교류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의료인 간 진료협진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까지 이에 대한 구체안이 도출될 예정이다.


복지부는 전 국가적 진료정보 교류의 밑그림도 설계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복지부는 최근 의료정보기업 티플러스를 ‘국가 진료정보교류 분야 미래 모형 설계’사업 주관사로 선정했다.


해당 사업은 정부 주도의 의료-IT 융합인프라 사업으로 지난 2012년부터 정부가 추진한 진료정보교류체계의 실증 준비단계다.


그동안 축적된 연구결과물을 토대로 의료 현장에 확산하고 보급 가능한 사업화 모델을 도출하고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것이 목표다.


올해 안에 시스템 설계를 끝내고 내년에 시스템이 구축되면 오는 2017년부터는 국가 통합 플랫폼 기반으로 한 병원 간 진료정보교류가 가능할 전망이다.


법·제도 정비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전자의무기록의 의료기관 외부 보관을 가능토록 해 현행 의료법 상으로는 불가능한 네트워크 및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진료 정보를 교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복지부는 최근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전자의무기록의 의료기관 외부보관 시 필요 시설·장비 기준안’을 마련했다.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진료기록 보존 장소 선택권을 명시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외부 보관 시 필요한 시설, 장비 구비 의무를 규정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관련 법 개정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가 마련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기관 외부의 전자시스템에서 전자의무기록을 관리·보존할 경우 ▲전자의무기록 생성 및 보관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갖춘 장비 ▲전자의무기록 이력 관리를 위해 필요한 장비 ▲전자의무기록 복제·저장에 필요한 백업 장비 ▲네트워크 및 시스템 보안에 관한 설비 및 장비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장비 ▲별도 출입통제구역 설치와 그 장소의 통제 및 감시를 위한 설비 ▲재해예방에 관한 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


전자의무기록 외부 보관 시 필요한 시설·장비 기준안은 ▲전자의무기록의 생성 및 보관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갖춘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증적관리를 위해 필요한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복제·저장에 필요한 백업 장비 ▲네트워크 및 시스템 보안에 관한 설비 및 장비 등에 관한 주요 기능 및 설비 요건을 명시했다.

복지부 산하 기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진료정보 공유의 근간이 되는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공단 성상철 이사장은 최근 창립기념사에서 “IC카드가 도입됐었다면 메르스 노출 조회와 병원 방문자 추적이 용이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중점과제로 추진할 것을 시사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이미 지난 4월 20일 진료정보교류 활성화를 위해 전자의료기록 인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이날 행사에서 “지금까지 진료정보교류가 있었지만 어떤 항목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 등을 각 의료기관이 알아서 했다”며 “이것만은 꼭 지키자는 국가 단위 표준이 없어 필요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초안은 작성된 상태다. 진흥원은 인증 가이드라인을 하반기에 현장에 실제 적용하고 검증을 마쳐 앞으로 진료정보 교류의 기초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자의료기록에 대한 일종의 틀을 만들어 병원 간 진료정보교류의 근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병원 참여 동기 부여 및 의료정부 유출 방지 대책 마련 관건


전문가들은 희생을 치르고 어렵게 되살아 나 불씨가 꺼지지 않기 위해서는 병원들이 진료정보 공유를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0년 만에 어렵사리 다시 추진되는 진료정보교류 사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실행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 행위별 수가제도 하에서는 진찰, 검사, 처방 등 진료 건수가 수익과 직결된다. 또한 진료기록이 병원의 진료 노하우가 담긴 지적재산권이라는 인식 때문에 기록 공유에 소극적이다.


진료정보 교류를 가로막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우려를 상쇄시킬 만큼의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실제 미국·캐나다의 경우 혁신사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뉴질랜드와 일본에서는 교류 행위에 대한 수가 보상을 통해 진료정보 공유를 유도하고 있다.


안선주 스마트의료 국가표준코디네이터는 “EHR 구축시 병원이 자체적으로 표준을 도입하고 활용하는 것에 대한 금전적, 비금전적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의 세계적 흐름은 표준기반 EHR 도입 자체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에서 EHR 사용으로 인해 의료 질이 향상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의료계는 약학정보원 지누스 등이 환자 개인정보 43억건을 불법 유출한 사건으로 인해 의료정보 관리에 대한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전현희 변호사(전 민주당 국회의원)는 최근 자신의 SNS에 “IC카드 도입으로 개인의 건강정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건보공단 직원의 개인정보 유출이 문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보안계획 없이 IC카드가 도입된다면 개개인의 건강정보가 위협을 받게된다”고 우려했다.


공단 국민토론방에서 한 시민단체는 “단순히 플라스틱 건강보험증이 아니라 전자칩 신분증으로 대체하게 되면서 결국 저장된 개인정보는 순식간에 온라인에 수집되고 유출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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