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버거운가' 의료계도 세대갈등 확산
2000년 의약분업 후 세태 급변 불만 폭증…'간극 좁혀질 수 있을까'
2015.12.30 09:36 댓글쓰기

[신년기획 上]사회적으로 세대갈등이 극명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그야말로 날고 기는 수재들만이 문을 두드렸던 외과, 생명의 첫 순간을 맞이하는 경이로움에 젊은 의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산부인과 등은 오래 전 이야기가 돼 버렸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급속한 변화에 세대갈등이 자리 잡았고 세대를 막론하고 이어져온 신구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선후배 중심, 스승과 제자로 대변되는 의료계 내에서 기성세대에 대항하는 단체들이 생겨날 정도다. 데일리메디는 2016년 신년기획으로 작금의 상황에서 세대 간 갈등 양상을 되짚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담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저수가 의료정책으로 누적되는 세대 간 '원성'


의료계의 ‘과잉경쟁’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새 병원 건립과 최신 의료장비들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고 중소병원은 치킨게임식의 서로 죽이고 죽는 진료행태를 보이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의원은 의원급대로 하루 평균 4곳이 폐업신고를 할 정도로 어느 직역보다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원급 개폐업 실태를 들여다보면 2014년 한 해 동안 신규 개원한 의원은 1838개다. 하지만 1283곳의 의원도 문을 닫았다.


1차 의료기관 10곳이 생겨날 때마다 8곳은 폐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10여년 사이 흉부외과와 산부인과, 외과, 비뇨기과 등 주요 진료과목의 의사 품귀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높은 진료난이도에 비해 낮은 의료수가와 의사들의 발목을 잡는 정책이 전문의 자격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이 되풀이되자 후배 의사들은 이런 환경을 물려준 선배들에 대한 원망감만 커져 세대 간 갈등의 골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어디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가장 가깝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경쟁자로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젊은 의사들은 의료 환경이 척박해 지면 질수록 의사만이 누릴 수 있는 자긍심과 자부심 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가의 진료과목을 선택하는 비율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빡빡하고 힘든 현실에서도 의사의 길을 택한 이상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늘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 원로 선배들의 당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교수는 "의사가 된 후 수십 번씩 낭독하는 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면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나의 능력과 판단을 사용하겠다는, 이른바 의사로서의 양심과 본분을 담은 선서를 할 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았지만 요즘 젊은 후배의사들에게 이런 선서를 강요하기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원로교수는 "요즘 뉴스를 통해 가끔 의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사례들이 종종 보도되고 있어 안타깝지만 바꿔 생각하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측은지심이 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원로의사는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이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의료행위를 정량화, 상품화, 규격화, 수치화시켜 수가를 책정하고 있어 자긍심은 고사하고 자존심마저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 원로의사는 "저수가에 의사들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정책들로 젊은 의사들은 자긍심을 갖기도 전에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면서 "비인기과 몰락은 정부가 만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의술을 의사의 양심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베풀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조성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의사의 의학적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도록 환경이 조성돼야 신구 세대간 갈등의 골도 메워질 것으로 보인다.


기회 박탈에 젊은세대 울분 
 

"기득권을 이용하기만 하는 일부 기성세대와 보건당국을 향한 견제가 필요하다. 의사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젊은 세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보건의료계 일련의 사안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전국의사총연합 정인석 대표의 발언이다.


정 대표는 “우리는 원가 이하의 강제진료수가라는 환경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고, 보건당국이 만들어내는 잘못된 규제와 싸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또 이를 지켜줘야 할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믿음도 사라진 상태”라고 밝혔다.


전의총이 일부 기성세대와 정부를 향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이어가는 것은 힘없는 젊은 세대의 권리를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라는 뜻이다. 


실제 한 젊은 여성 개원의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실사를 통해 병원을 접게 된 사건이 의사커뮤니티를 통해 퍼지자 이를 구제하기 위한 서명운동과 소송으로 시작된 게 전의총 설립의 단초가 됐다.


전의총은 이러한 투쟁을 이어가겠는 의미를 갖고 지난 2009년 8월 탄생했다.


최근에는 추무진 의협회장이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합의안을 강요하는 복지부에 대해 “정상적인 투쟁 태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탄핵 청원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초들 일어설 때, 세대갈등 풀릴 것"


대한의원협회 역시 전의총과 같은 맥락에서 설립됐다. 선배라고 불리는 기성세대들이 젊고 힘없는 젊은 세대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만이 가중됐다. 


윤용선 회장은 "의협은 교수, 봉직의, 전공의 등 모든 직역을 아울러야 하는 상황으로 개원가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의원협회는 지난 2011년 개원가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독립적 단체로써의 역할을 하기 위해 탄생했다. 때문에 병원협회와의 갈등양상이 종종 포착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의협-전의총, 병협-의원협회의 대립각 형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들은 기득권 세력들을 향한 날선 비판보다, 각 단체나 업무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도 젊은 세대, 그리고 개원가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원협회 송한승 수석부회장은 "각 세대들의 마땅한 권리가 보장될 때 대한민국 의료계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기성세대와의 갈등은 없어질 것이며 힘없고 젊은 세대 역시 제대로 된 의료환경에서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제약사 영업방식 놓고도 이견 커…“차라리 접대비를 R&D 투자하라”


“제약영업이 사람 중심이라지만 옛말이죠. 요즘은 약만 좋으면 사람보다 정보가 우선이네요.” (A제약사 항암제사업부 MR)


“정에 기대는 선배들의 영업 방식으로는 국산 제품은 높은 기술 가치를 평가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C헬스케어 스타트업 관계자)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라는 영업마인드가 옛말이 됐다. 시장이 예년과 같지 않고 환경이 달라졌으니 사람들도 달라진 것이다.


세대갈등은 비단 의사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나 좁은 바닥으로 통하는 헬스케어산업에서도 영업방식을 놓구 신구(新舊) 세대 갈등이 점차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종합병원 인근 카페에서 영어공부에 여념이 없는 젊은 영업사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근무시간 틈틈이 업무를 위한 어학능력을 키운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입장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이 같은 상황은 세대 간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된다. 부장급 이상 4050세대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종 수요자와의 긴밀한 스킨십 유지는 필요악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2030세대는 밥에서 술로 이어지는 ‘옛날 스타일’의 영업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외국계 제약 영업사원은 “어차피 교수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굳이 근무외 시간을 써가며 술자리를 만들어 봐야 피곤할 뿐”이라며 “그 시간에 학술과 어학 능력을 키워 세련된 영업방식을 택하는 것이 낫

다”고 말한다.


또 국내 다른 영업사원은 “제네릭인 제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자리 등을 갖는 경우가 있다. 사실상 술자리 자체가 스트레스다. 정말 내년에는 팀을 옮기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토로한다.


의료와 IT 기술의 융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의료기기업계에서도 기존 플레이어와 신규 플레이어의 업무 방식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B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창업한 K씨는 선배들의 ‘술자리 영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기술력이 아닌 인적인 관계에 기대는 영업 방식에서 얻을 수 있는 당장의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이다.


K씨는 “진짜 영업은 술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선배들이 내세우는 논리인데 동의할 수 없다”며 “수요자들이 살 수밖에 없는 제품을 개발한다면 접대 없이도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두번이면 모르겠지만 접대비가 고정적으로 지출된다면 회사로서는 감내해야 하는 출혈이 크다. 접대비를 R&D에 투자하는 편이 회사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C헬스케어 스타트업 근무하는 D씨는 “외국에서 바이어나 의료기관 구매 담당자를 만나보면 의료 현장에 혁신을 가져다 줄만한 제품이라면 기꺼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구매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한국의 경우 얼마나 낮게 납품할 것인지가 관심사”라며 “이를 깨려면 접대 등 ‘플러스 알파’ 없이도 영업이 가능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회사의 경우 ‘제 값을 지불하려는 수요자에게만 제품을 공급한다’는 것을 영업 방침으로 정했다.


제약·의료기기 영업맨 ‘2030 vs 4050’ 지향점 입장차


그러나 4050세대를 대표로 한 영업 관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헬스케어 업체들은 소수 다국적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산업 구조 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공식적인 네트워크 형성은 중요한 영업 방식이라고 방어한다.


J제약사 수도권 지역의 한 지점 팀장은 “제품이 다가 아닌 것이 현실”이라며 “제품으로만 영업을 한다면 영업인력 자체가 지금처럼 필요하지 않을 거다. 어린 후배들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물론 일 자체의 압박도 심하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회사 입장에서는 영업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개인투자도 적지 않은 부분인데 단순히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H의료기기 제조사에서 마케팅 차장으로 근무하는 40대 초반 I씨는 “외국제품에 비해 국산제품의 기술력을 아무리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의사들의 외산브랜드 선호 경향이 깨지지 않는 이상 시장 진입장벽을 뚫기 어렵다”며 “조금이라도 납품 가능성을 높여보기 위해 인적 스킨십이라도 동원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I씨는 “마케팅 비용 출혈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두가 다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정 경쟁이 가능한 상황이 돼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 의료기기 제조사에서 근무하다 3년여 전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창업한 J씨는 “의사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는 그 어떤 사업도 진행되기 어려운 실상에 부딪혀봐야 선배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패기가 넘치는 나머지 너무 순수하게 사업에 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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