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제자들에게, 후배가 선배 의사들에게
팍팍한 정책 등 기인 불 붙은 세대갈등 폭증…'간극 좁히자'
2015.12.30 09:41 댓글쓰기

[신년기획 하] 新-舊 의료계 세대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암 교수)


어느 덧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12월입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새해를 맞는다는 즐거움과 어느새 또 한 해가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며칠 전 새해를 맞아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다 보니 문득 제가 처음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제게 어느 날 갑자기 스승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제가 전공의 시절부터 늘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시고는 제게 지방이지만 국립대학의 교수 자리가 났으니 갈 마음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근무했던 병원에서 그 시절로서는 꽤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같이 일할 것을 권했었고, 치료를 받던 동네 유지께서도 병원을 지어 줄테니 개업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돈보다는 제가 바랬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교수의 길을 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학 교수로서 후회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물론 대학 교수가 된 후 처음 몇 달간은 얄팍해진 월급봉투를 바라보며 잠시 한숨을 쉰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이뤘다는 즐거움에 저는 밤낮으로 분만을 받았고 학회에 나가 발표도 했으며, 또 강의 준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컴퓨터를 두드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저는 반백의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길게 사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단 하나, 젊은 우리 후배들에게 제발 꿈을 가져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며칠 전 우연히 모 방송을 통해 개원의에게는 이제 탈출구가 없다는 젊은 원장님의 자탄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원장님은 구구절절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문제점들에 대해 말씀했고, 정부를 향해 도움을 달라고 호소도 했습니다.


지금 제가 그 원장님께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드릴 수는 없지만 당시 말씀을 듣고 생각난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즉, 의사로서의 삶에는 몇 가지 길이 있습니다. 개원을 할 수도 있고, 교수로서 살아갈 수도 있으며, 종합병원에 취직하여 환자들을 돌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의사로서의 길이 내 꿈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판단된다면 그 길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도 의사의 길을 버리고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많은 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감히 어떤 길이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처음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아님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생각했던 내 미래에 대한 꿈과 지금의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과의 비교가 아닌 내가 꿈꿨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무엇을 이뤘는지, 아니면 무엇을 잃었는지 등을 살필 수 있습니다.


돈을 벌다보니 친구를 잃은 적은 없었는지, 명예를 좇다보니 환자의 건강을 살피는데 소홀한 적은 없었는지 등. 그리고 을미년의 페이지를 덮으면서 새하얀 병신년의 새 페이지에 새로운 꿈을 적어 보시길 권합니다.


언젠가 저는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꿈꾸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꿈꾸는 자만이 비상할 수 있다. 꿈에는 한계가 없다. 마음껏 꿈을 꿔라.”


그리고 이제 곧 한 해가 마무리되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 번 꿈을 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이제 이 글을 마치고 나면 제 꿈을 적어보겠습니다. 이룰 수 있을지 아니면 개꿈이 될지 미지수지만 그래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의대 김형규 명예교수)


요즘 전공의들은 돈을 줘도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적게 벌더라도 편하게 살겠다는 것이죠.


사실 인기과와 기피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전공의들의 선택은 말릴 일도 아니고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도 오래 전에 겪었던 일이고 해법은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선배의사로서 젊은 의사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전문과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일은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의료계를 보면 지금 인기를 모으는 과들도 보험제도가 바뀌면 순식간에 기피과로 전락합니다. 전문과는 레지던트 때 한 번 정하면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일이란 30년은커녕 10년 앞도 모른다고 해야겠죠. 그렇다면 그냥 하고 싶은 과를 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안하고 평생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물론 이 같은 밑바탕에 깔려있는 의료계 저수가 체계, 수련환경 등 선배의사들이 풀었어야 하는 문제들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의료계 대응으로 투쟁도 있었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힘을 소모했죠. 게다가 투쟁으로 얻은 것이 있으면 다행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나마 최근 전공의들이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전공의 특별법을 제정한 것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료현장의 혼란은 피할 수 없겠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을 일이라고 봅니다.


이 같은 변화 속에 의사에 대한 위상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이 알아야 할 점은 의사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직업의 비전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직업에 따라 사회‧경제적 위치는 달라지겠지만 의사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분명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입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기동훈 부회장)


초저수가로 인해 의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내과마저 몰락의 길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이 추세라면 외과가 몰락했듯이 향후 5년 내에 내과 전공의들 수는 급감할 것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최근에 전공을 선택할 때 본인의 적성, 미래, 삶의 질 등을 고려하게 됩니다.미래가 어둡고 불확실한 과는 다른 부분을 만족하더라도 결국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결국 이 같은 저수가 체계 내의 기피과 심화는 국민들이 받게 될 의료서비스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것이며 국민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동안 의사집단은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이슈화 시킬 수 있는 홍보능력에서 너무 무기력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SNS, 공중파 등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정부의 보건정책을 비판해야 합니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집단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몰락했습니다. 근 10년간 정부의 눈치만 살핀 결과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전공의 수련과 관련해서도 그동안 수련병원들은 저수가를 타개하기 위해 수가인상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전공의들의 노동력으로 그 간극을 보전해왔습니다.


이런 모순이 쌓여 결국 한계에 이르러 전공의특별법 제정에 이르게 됐습니다. 현재의 의료체계에서는 국가의 개입 없이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이 개선될 수는 없다는 판단입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에 대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공의 수련에 대해 국가가 재정적 지원을 하는 부분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에 추후 재정 지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 의사들이 지금까지 쌓여 왔던 현재 의료상황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 조중현 회장)


의료는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급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졸업 후 의료인으로서의 소명감을 갖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최근에 극명하게 드러났던 전공의 수련환경의 문제점이나 특정과 기피현상을 비롯한 많은 의료계내 문제점들이 저수가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입니다.


기피과에 대한 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특정 과 쏠림 현상에 대해 일시적인 지원으로 이를 해소하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다른 기피과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전반적인 차원에서의 정책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최근 제정된 전공의특별법을 통해 전공의 수련환경의 개선되리라 생각합니다.


전공의 특별법 제정 중 가장 큰 의의는 근로시간 단축과 더불어 수련평가기구가 독립되었다는 것입니다. 의대생들은 소통하고 개선해나갈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의대생들도 예비 의료인으로서 여러 의료 현안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변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선배의사들이 이러한 변화에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기 바라며 지속적으로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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