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화려하고 실속 아쉬운 국회 입법기능
4개월여 남은 제19대 보건복지委, '역대 법안 발의는 최다 처리는 최소'
2016.01.08 20:00 댓글쓰기

 

[기획 상]1948년, 국민을 대표해 최소한의 규율을 세우는 대한민국 국회가 역사에 등장했다. 이후 67년이 지난 지금 19번째 국회가 역사의 일부를 장식하고 있다.


그 외견을 살펴보면 일견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찬란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 단적인 예가 국회의 다른 말인 입법부로서의 역할 수행 결과다.


이번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를 마친 후인 12월 10일까지 1만8184건의 법률안이 접수됐다. 역대 최다다. 이 가운데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법률안은 1만6239개로 89%에 이른다. 역시 그간 국회가 거쳐 온 시간 중 가장 많은 수다.


그러나 정기국회가 막을 내리고 총선까지 4개월여 남은 지금까지 처리된 법안은 총 6867개로 전체 접수건 중 38%에 그치고 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 처리건수는 전체의 34%인 5585개로 더 빈약하다.


역대 국회들과 비교해볼 때 가장 많은 법안을 제출했지만 가장 낮은 처리현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원임기가 남아있고, 그동안 임시국회를 열어 남은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적, 물리적 한계는 분명하다. 심지어 국회의원에게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자 생사여탈이 달린 총선이 예정돼있어 법안 처리비율이 크게 늘지는 못할 전망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회가 여론에 일희일비하며 법안을 남발한 결과라고 평했다. 여론이 뜨거워지자 너나할 것 없이 중복된 법안을 내놓은 후 관심이 멀어지면 손을 놔버린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청와대는 이 같은 사태를 포함해 정기국회를 끝내면서까지 벌어진 여야정쟁을 두고 "국회 스스로 입법기능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묻혀버린 법안들


지난 2014년 8월, 보험사기 방조 협의로 경찰이 강남 A이비인후과의원을 압수수색한 일이 있었다. 수술 중이던 원장은 수사관들의 난입에 7분30초간 수술을 중단했고, 환자는 마취상태로 수술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이는 '수술실 습격사건'으로 불리며 의료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분을 샀다. 당시 수술대에서 비중격성형술을 받고 있던 여성은 언론 앞에서 "끔찍했다"며 두려움과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무리한 압수수색의 문제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달리 의료진에 의한 수술실 문란행위가 도마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한 성형외과에서 환자가 마취상태로 누워있는 수술장에 케익과 초를 들고 생일파티를 하는 사진이 전파를 타고 퍼진 사건이다.


이 외에도 속칭 '쉐도우의사' 또는 '유령의사'로 불리며 환자 몰래 수술을 집도하는 이들의 존재가 드러나거나 가수 신해철의 사망사고 등 의료분쟁 발생시 사고를 낸 의료진의 입에만 의존해야하는 문제들이 연이어 불거졌다.


이에 수술실을 가린 암막을 걷으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수술실 CCTV 의무화법'이다.


법안 발의 초 의료계는 격분했다. 환자와 의료진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이자 환자 생명을 위협하는 악법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환자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표하며 법제화를 거듭 촉구했다.

 

첨예한 갈등 때문인지 법안이 발의된 후 3개월여 만인 지난 4월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돼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팽팽한 의견대립에 '차후'를 기약하고는 7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기별조차 없다.


새정연 오제세 의원이 보건복지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3월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를 골자로 발의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또한 마찬가지다.


의료분쟁자동개시법은 빈혈 증세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사망했지만 병원이 정당성을 주장하며 의료분쟁 조정신청을 거부해 논란이 된 초등학교 3학년 故 전예강 양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명 '예강이법'으로도 불린다.

더구나 현재진행형인 故신해철 씨 사건과 결부돼 법제화 서명운동이 이는 등 여론에 힘입어 상임위 문턱까지 올랐다. 하지만 의료계의 강한 반대와 여론의 관심이 식으며 복지위 내에서도 별다른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의료인 폭행방지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지난 2012년 12월 발의된 후 3년여 국회에 발목이 잡혀있는 동안 의료인들은 흉기에 위협당하고 주먹에 무릎을 꿇어야하는 일들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그럼에도 사건이 발생한 직후 여론의 집중조명에 반짝 논의 필요성이 대두됐다가도 시들해지길 반복하고 있다. 지금도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이상민)에 회부된 채 여러 이유들로 심의가 미뤄져 법제화가 점차 요원해지고 있다.

 

'법안의 무덤' 오명 쓴 보건복지委

 

문제는 이런 법안이 19대 국회에만 1만1317건로 전체 접수안의 62%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법안이 계류 중인 위원회가 바로 ‘보건복지위원회’다.


지금까지 복지위에 접수된 법안은 1933건이다. 이는 2048건이 접수된 안전행정위원회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그럼에도 처리비율로 따지면 31.8%에 불과하다. 26개 위원회 중 뒤에서 7번째다.


하지만 미처리 비율이 높은 상위 2개 위원회 계류법안의 경우 윤리특별위원회는 35건, 정보위원회는 28건으로 큰 논쟁이 없는 한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실질적인 법안 소화능력은 밑에서 5위로 볼 수 있다.

 

복지위보다 처리비율이 낮은 위원회는 끝에서부터 총 1587건 중 20.4%를 의결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454건 중 110건이 계류된 국회운영위원회, 1278건 중 26.6%를 처리한 법제사법위원회, 1623건 중 총 27.5%를 의결한 기획재정위원회 순이다.

 

 

이를 두고 국회 관계자들은 '법안의 무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들어는 가도 나오지는 못 한다"는 평가를 내린다. 심지어 한 국회의원은 정기국회 말미인 9일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한다"며 "복지위처럼 오명을 써서야 되겠냐"는 농담 섞인 독촉을 동료의원들에게 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접수건수 혹은 처리건수 만으로 순위를 매길 경우 이들 위원회가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4년여간 접수된 건수로는 안행위가 2048건으로 1위, 복지위가 1933건으로 2위, 기재위가 1632건으로 3위, 교문위가 1587건으로 4위에 오르며 상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의결건수로 살펴보면 복지위는 총 614건을 처리해 안행위(751건), 국토교통위원회(748건) 다음으로 많은 법안을 소화했고, 기재위는 449건으로 6위, 교문위는 323건으로 11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상임위 소속 의원들 개인적인 입법활동은 활발하지만 '무덤'으로 지목된 위원회들의 물리적, 시간적 한계로 처리할 수 있는 양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복지위)은 정기국회 마지막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마치며 "의원들이 법안을 찍어내는 기계는 아니지 않느냐"며 "지금까지도 많은 시간을 들여 면밀히 검토하면서도 많은 양의 법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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