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콜(Call) 잘 받아야 실적 좋아져요”
제약 영업사원들 “처방 등 간택 위한 비상대기 필수”
2016.04.15 05:33 댓글쓰기

[기획 4]‘한미약품 나비효과’ 등으로 제약사 위상이 상승하고 있지만 영업사원의 업무상 기다림은 여전하다. 건전한 업무상 관계가 아닌 ‘갑-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리베이트 쌍벌제 이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아졌다. 계속 얼굴을 내밀다 보면 처음엔 귀찮아하던 의사들도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는 논리다.

아직도 많은 제약사들은 동선이 연결되는 지역을 적절히 묶어 팀별로 배분한다. 지역별 병·의원을 팀원 수로 나눠 1인당 할당량을 정해준다.

매출 상위 제약사들의 경우 보통 영업사원 1명이 20~40개 병·의원을 맡는다. 한 곳당 월 평균 100만원 이상을 처방 받아야 5000만원에 달하는 실적을 달성할 수 있다. 

최근엔 줄었지만 영업사원들은 방문 횟수인 ‘콜’을 하루 많게는 10개 이상 뛰어야 한다. 단순 방문이 아닌 타깃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한 곳에서 한 시간 이상 소요되면 일정조절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제대로 된 ‘영업활동’을 위해선 주말에도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국내 상위 제약사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A씨는 “기회가 올 때 놓쳐버리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에 항상 출동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영업사원은 볼펜, A4용지 등 사무용품에서부터 테이크아웃 커피, 간식 조달도 종종 떠맡는다. 특히 소모품 조달은 시간 싸움이라 자칫 늦었다가는 타 회사에게 밀리기 쉽다. 결국 가장 빠르게 가져다주는 영업사원이 간택된다.

의사 진료시간 종료에 맞춰 눈도장을 찍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과다. 진료가 길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지만 이는 곧 숙명이 됐다.

다만 눈 밖에 나면 처방액이 ‘0원’으로 줄어드는 건 시간문제다. 의사들은 같은 약효의 복제약이 널렸는데, 감정이 상한 제약사와 굳이 거래관계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장 부인까지 관리···“실적 위해선 전략 필요”

준종합병원의 경우에는 병원장 등 의사뿐 아니라 약제부장, 간호부장 등의 마음까지 사로잡아야 한다.
 

영업사원 C씨는 “중소 병원의 경우 간호부장 등이 병원장의 아내인 경우가 많고 이들이 제약사 선택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며 “이들 역시 VIP로 관리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병원장 또는 타깃이 되는 의사의 아내가 하는 일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근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린 한 영업팀의 일화가 회자된다.

이곳 종합병원 A과장의 아내는 미대를 전공한 뒤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오다 최근 전시회를 열었다. 대부분의 작품은 높은 가격에 팔려나갔다. 본사 차원의 자금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영업사원 D씨는 “원장 사모님의 피아노 연주회 티켓을 떠안는 경우도 있다”면서 “리베이트쌍벌제 이후 이 같은 변형된 리베이트 제공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달라진 세태도 있다. 영업사원 E씨는 “최근에는 현금을 건네면 아예 정색하거나 술자리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골프를 쳐도 각자 비용을 내는 등 이전과는 의사들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 부분도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접근하기 더 어려워진 의사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간택 영업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시대가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제약사 영업사원이 된 순간부터는 개인 시간은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며 “모두가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는 만큼 큰 불만은 없지만 언제까지 비효율적인 일과를 지속해야 하는지 아쉬움은 크다”고 푸념했다.
 

“영업사원 친밀도와 성실성에 따라 약처방 영향 가능성 좌우되는 현실”

의사들은 영업사원 방문과 진료실 앞 기다림은 부담이 되지만 친밀도와 성실성에 따라 약 처방에 영향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A내과 원장은 “리베이트 여부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매일 안부를 묻고 친분을 쌓아나가다 보면 솔직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면서 “성실히 일하는 영업사원의 약품에 손이 한 번 더 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P원장 또한 “사실 영업사원이 찾아와서 약 처방 관련 논문과 유명 저널에 기재된 약 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제공해주는데 어떻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느냐”면서 “충분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했다.

개원의는 진료실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약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학회나 관련 제약사를 찾아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제약사 영업사원이 제공하는 처방 의약품에 대한 정보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경기도 한 신도시의 개원 5년차인 S원장은 “동일한 성분에 동일한 약값이라면, 성실히 하는 영업사원의 제약사를 써 줄 수 있다고 본다”면서 “다만 평소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제약사의 경우에는 아무리 찾아와도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약사 영업사원의 방문에 대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개원의도 있다. 또 진료실 앞에 무작정 기다리는 영업사원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N 교수는 “리베이트 쌍벌제법 시행 이후 더욱 영업사원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면서 “직접적인 만남은 피하고, 약 관련 자료는 이메일로 받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개원 16년차인 K가정의학과 원장은 “입사한 경력이 짧은 영업사원의 경우 환자들 틈에서 한 두 시간씩 무작정 기다리는 이도 있다”면서 “우리 의사들 역시 갑-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사라진 만큼 보다 당당히 만나길 청하는 것도 좋을 방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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