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패러다임 대세···한국의료 방향 키 촉각
2016.04.22 06:24 댓글쓰기

[기획 下] ‘2116년의 사람들은 병원 대신 집 안에 설치된 ‘메디 포드(medi-pod)’로 향한다. 각종 센서와 진단용 의료기기가 설치 된 ‘개인 병원’에서 매일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3D프린터로 제조된 약과 패치를 즉각 처방 받는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 세계 최고의 명의로부터 원격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

- 삼성 스마트싱스 보고서 -

역사적으로 인간은 거대한 흐름의 전환에 두 가지 방식으로 대처해왔다. 생물학적 능력을 향상시켜 줄 도구를 개발해 효용 가치를 높이거나 아니면, 새로운 도구 출현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유형이다.
ICT·AI가 이끄는 거대한 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는 국내 의료계도 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새 패러다임을 진두지휘하려는 그룹과 현재의 입지를 고수하려는 움직임으로 나뉘어 눈앞에 다가온 첨단 의료 시대를 다르게 맞이하고 있다.

저항하는 그룹은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른 의료 패러다임 전환이 의사의 역할 축소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변화를 주도하는 집단은 시대 변화에 맞게 의사 역할도 새로 정립하고, 기계를 능동적으로 사용해야 환자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反 “디지털기술 잘못 활용하면 국민건강 위협”

한 쪽에서는 ICT의 미래 발전상인 AI 적용을 논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디지털 기반 건강관리 마저도 반대한다. 원격의료를 위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의료계, 특히 개원가는 지난 20년 동안 원격의료 추진을 반대해 왔다.

미국, 일본, 호주, 중국 등은 이미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1997년 도입했고, 일본과 호주는 물론 우리보다 의료 환경이 좋지 않은 중국도 지난 2013년 시작했다. 한국은 지난 2014년에야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필사의 각오로 원격의료 저지를 외치던 의료계에 지난 2월 17일 예기치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가 ‘제9차 투자활성화대책회의’를 통해 건강관리서비스를 보험사 등 민간에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건강관리를 의료 행위와 구분함으로써 ICT를 활용한 다양한 신(新)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올해 9월까지 의사면허 없이도 가능한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한다는 계획이다.

예시로 든 건강관리서비스 범위에는 ▲의료기관 진단·처방을 토대로 한 사후관리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생활습관정보 축적관리 및 이를 활용한 서비스 ▲맞춤형 영양·식단·운동 프로그램 등 설계 ▲금연·절주 등 생활습관 개선을 위한 상담 및 관련 용품 제공 등이 포함됐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단체들은 “건강관리를 의료에서 분리하려는 시도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의료체계를 붕괴시킬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에 오히려 위해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의협은 “명백한 의료 영역인 건강관리를 민간에 위임하게 되면 의료전달체계를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유사 의료행위가 판을 치고 국민 의료비는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밝혔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영역 축소를 국민 건강 위협과 동일시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한 의료기기업계 관계자는 “국민 건강권을 볼모로 과거에 머무르려고 하는 의사들 때문에 갈라파고스에 갇힌 대한민국 의료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꼬집었다.

건강관리 서비스가 제도권 내로 진입하게 되면 ICT 기반으로 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를 사업 모델로 활용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실제 이 같은 분야는 ICT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화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반면 의료법에 가로막혀 사업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 SK텔레콤, KT 등 대기업을 비롯해 스타트업, 보험사들이 다양한 디지털헬스케어 제품 및 솔루션을 개발했지만 사업화에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

대신 국가 과제 수준의 연구에 머무르거나 의사단체의 날선 저항과 규제를 피해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讚 “의사+기계, 새로운 가치 창출”

변화를 보이콧하는 움직임과 달리 기술을 적극 활용하려는 의사들도 있다.

전문가인 의사와 의료기관이 ICT·AI가 바꿔놓을 의료의 변화를 최선봉에서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판단이 근저에 깔려 있다. 기계와 의사가 환자 건강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정립하려는 것이다.

기계를 파트너로 삼은 의사들은 의료 빅데이터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무의미하게 쌓여 있는 데이터들을 질병 예방과 치료를 위해 의미 있게 활용하려는 목적이다.

가천대학교 길병원, 아주대의료원이 참여한 ‘오디세이 컨소시엄’이 대표적이다. 각 병원 데이터를 하나의 형식에 따라 구조화해 동일한 분석 플랫폼으로 질환 별 환자 케이스를 비교, 분석하는 방식이다.

길병원 환자 200만명, 아주대병원 260만명의 데이터가 연계돼 약물부작용 예측 등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향후 다수의 병원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도 연계될 경우 방대한 자료의 분석이 가능하다.

아주대병원 박래웅 교수는 “전 세계 11개 기관 5억6000만건의 데이터로 각 국의 치료법 차이를 비교, 분석하는데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기술은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IBM왓슨과 유사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개발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10월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으로 의사 진단을 지원하고 정확한 연구를 돕는 분석 툴을 개발하고 있다.
 

의대 교육도 빅데이터 과목 비중 늘리는 추세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은 데이터 분석 관련 과목에 7학점을 배정했다. 졸업하기 위해서는 ‘대용량 의과학 데이터 분석’, ‘R프로그래밍’을 전공 필수로 들어야 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데이터 사이언스’를 온라인으로 수강해야 한다.

아주의대 박래웅 교수는 “의료 빅데이터 분석 능력이 곧 미래 의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규제로 인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가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 등 공익적 연구 측면에서는 민감정보 및 고유 식별정보를 수집해 연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면서 민간자료와 공공자료를 용이하게 교환, 공유하기 어렵다.
활용 가능한 데이터 범위에 제약이 있으면 연구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알파고와 같은 AI의 생명은 학습 기반인 데이터다. 양질의 데이터가 입력되지 않으면 분석 및 판단 결과의 정확도 역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요구가 빅데이터 연구를 저해시키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추세다.

연구자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연구 목적용 자료를 신청하는 경우 외부 연구자에게 개인 식별자를 제거해 제공하고 있다.

미국 SEER(Surveillance Epidemiology and End Results)가 대표적으로 미국국립암연구소(NCI)의 암 레지스트리 자료를 메디케어 청구자료와 연계해 연구 목적으로 활용토록 하고 있다.

SEER-Medicare를 활용한 연구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암 치료법에 대한 폭넓은 이해 덕분에 신약 개발 및 급여 정책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제도적 한계 때문에 병원 내부에서만 진료 정보가 공유되고 있을 뿐 병원, 지역, 국가 간 정보 교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의료정보학회 박현애 회장은 “데이터 분석 범위를 병원 내 EMR 자료로 국한하면 결코 좋은 연구결과가 나올 수 없다”며 “다른 나라처럼 병원 간 데이터를 개방하고 활용하는 컨소시엄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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