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피할 수 없다' vs 환자 '막을 수 있다'
의료소송 급증 추세… 의료사고 엇갈린 시각
2012.10.11 11:22 댓글쓰기

의료계 관련 소송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부당청구에 대한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이나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의 취소 소송, 약사법 위반 등 다양하다. 물론 그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의료사고 소송이다. 국내 빅5 병원은 물론 대학·대형병원 등도 예외가 아니고, 개원가도 의료관련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리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를 두고 병원계와 환자단체 등은 서로 엇갈린 시각을 보이고 있다. 병원계는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환자단체는 소송까지 치닫지 않고도 재발치 않게 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그들이 바라보는 의료사고 소송에 대한 시각을 알아봤다.

 

사망·장애 등 의료사고·소송 ‘각양각색’

 

지난 5월 A대학병원은 침대에서 낙상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환자에게 충분한 예방 교육은 물론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보호자 귀가를 허락했다가 환자가 사망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졌다. 


지난 7월 강남성심병원에선 누워있던 환자가 먹은 음식을 구토, 병원이 환자의 구토물 잔량을 확인했으나 이를 제거하지 않아 질식을 야기함으로써 결국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의료과실 주장이 제기됐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같은 달 B대학병원은 조직검사 결과를 6개월이 지나서야 확인, 뒤늦게 악성흑생종을 진단함으로써 항암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가 폐·간 등으로 종양이 전이돼 사망하자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갖게 됐다.

 

그런가하면 서울 소재 C정형외과 원장은 치료를 위해 축구선수 발가락에 나사못 고정 수술을 시행했고 뼈에 강하게 조여있자 제거치 않고 수술을 종료했다. 이에 선수 측은 나사못을 제거할 수 없게 됐다며 의료상 과실을 주장했지만 술기상 문제가 없어 병원이 최종 승소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의료소송 사례가 존재하지만 최근 의료계 전체를 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일명 '빈크리스틴 사건'이라 불리는 '종현이 사망 사례'가 바로 그 것이다.

 

지난 2010년 백혈병으로 경북대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해오던 정종현 군(당시 9세남)이 마지막으로 빈크리스틴과 시타라빈 등 두 가지 항암제를 투여 받은 후 급격히 상태가 악화돼 열흘 만에 사망했다.

 

이에 유가족은 사망 전 종현이의 증세가 정맥으로 투여돼야 하는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으로 투여됐을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증세 및 경과와 정확히 일치했다며 항암제를 투여한 해당 병원 소속 전공의의 의료 과실을 주장하고 나선 바 있다.

 

환자단체 등 “의료사고 소송, 병원 책임 다분”

 

이와 관련해 환자단체 등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소송까지 치닫는 경우는 병원 측 책임이 비교적 다분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환연회 안기종 대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의료사고를 바라보는 환자들의 관점은 분노, 보상, 공익적 측면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안 대표는 “의료사고로 추측하고 문의·항의를 하는 환자들에 대해선 귀를 기울이고 답해주면 되고, 돈을 원하는 경우 적정선에서 병원이 보상해주면 된다”며 “공익적 목적으로 항의할 경우 병원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무시하지 말고 들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어떤 종류든 병원에서 조절이 가능하지만 병원은 대개 의료사고가 터졌을 때 환자를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며 “기본적인 소통문제만 해결됐더라도 법정 소송까지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무엇보다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는 “의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다만 억울하게 내 가족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다만 그렇게 억울한 상황에 처할 경우 모든 불만과 억울함을 환자 측에서 토해낼 방법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또 “환자의 알 권리를 왜 보장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정보를 많이 달라는 것뿐”이라며 “이와 같은 맥락으로 환자안전법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 제정의 필요성이 명백히 요구되는 때”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도 일부 공감하며 의료사고에 있어 환자 및 유족 측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입증 책임임을 지적했다.


강태언 사무총장은 “현실적으로 의료사고가 일어났을 때 환자 측은 사고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의료 환경이라는 특수 분야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법률적인 판단에서는 환자에게 입증책임이 지워진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일반적인 의료사고 승소율이 40~50%인 것에 반해 산부인과의 경우 10%밖에 되지 않는다”며 “진료기록이나 산부인과 기록은 몇 장 되지도 않는데 환자 입장에서 어떻게 과실 여부를 입증해낼 수 있겠느냐. 의료계의 협조가 없어서는 의사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병원계 “보상 목적 대부분… 어수룩하면 당해”

 

반면 병원계는 의료사고에 대해 반발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보상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제기했다.

J대학병원 법무팀 관계자는 “언론 등에 노출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의료사고도 많고, 그들 중 대부분은 보상 목적이 대부분”이라며 “보상금을 주고 쉬쉬하며 넘어가는 사건도 은근히 많다”고 귀띔했다.

 

더불어 “대부분의 병원들은 보험에 가입돼 있어 중대한 사안의 의료사고가 아닌 이상 쉽게 보상해주고 해결한다”고 말했다.

 

특히 병원계는 과거 대비 의료사고 관련 소송의 절대적 수치의 증가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양상이다.

 

P대학병원 법무팀 관계자는 “의료 등 전용 법원까지 생겨나는 마당에 확실히 의료사고 관련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며 “의사 출신 변호사나 의료 담당 법무법인까지 많아지면서 환자들의 소송제기가 늘었다. 병원도 어수룩하다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전했다.

 

또 “대체적으로 병원들은 배상 보험 등을 들어놨기 때문에 가벼운 의료사고의 경우 보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사망·장애 등 중대한 사안인 경우, 보상 금액 차원에서 환자와 병원 간 차이가 커 소송까지 진행되는 사례가 다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의료라는 전문적 영역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일어나는 대립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60대 사망 사례를 두고 병원은 전문가 자문을 받아본 결과 5000만원이면 보상된다고 판단됐지만 유가족 측에선 1억5000만원을 요구한 바 있었다”며 “의학적 전문성 등을 충분히 설명, 이해시키려 해도 이미 두 집단의 금액 차이로 삐거덕거리기 쉽다”고 꼬집었다.

 

또한 “현 의학적 수준에서 병원은 최선을 다했다며 해명 아닌 해명을 지속한다고 해도 환자 측은 의료진과 병원에 대한 이해의 폭이 적다”며 “결국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한국소비자원 등의 힘을 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사고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선 의료적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개인 신체 영역의 다양성으로 인한 복잡함이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장 힘들다”며 “간단하게 처리될 수 없고 예산이 커지는 사안이 될 수 있어 늘 골칫거리”라고 평했다.

 

지난해 의료과실 소송을 제기당한 바 있던 천안시 소재 모 정형외과 소속 의사 P씨 또한 “개원가에서는 작은 요소 하나로 비슷한 소송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의료라는 특수분야에 대한 환자들의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개원의들의 어려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병원 내 환자 관리 인프라 無…리스크 매니저 필요”

이 같은 환자-병원계의 대립 시각을 두고 의료법 전문가 등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 병원 내 환자 관리 인프라가 전무함을 들어 지적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비상임위원 K씨는 “의사들의 의료과오를 주장하는 환자들의 행태는 현장에서 항의하거나 소송 등 절차에 의해 항의하는 경우 등으로 나뉜다”며 “특히 절대적 신뢰를 갖는 의사일수록 기대 효과가 큰만큼 항의도 커질 수 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오더 내리는 데 익숙한 고압적인 자세를 많이 갖고 있고 그로 인해 환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의 자세가 부족하면서 환자 반발을 더 키우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그는 “문제는 항의 및 소송 등 환자들을 확실히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병원 내에는 전혀 구축이 안돼 있다는 점”이며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인해 상황은 악화된다”고 우려했다.

 

또 “현재에도 병원마다 적정관리팀 등이 존재하지만 환자에 대한 본질적인 질 관리는 하고 있지 않고, 직접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며 “그들에게 진심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sorry work’의 권한을 줘야하지만 관념적으로 존재할 뿐 실제 메커니즘조차 없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의료기관에 대한 불편한 인식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나섰다. K씨는 “여타 기관과는 달리 의료기관은 보험가입 사실을 최대한 사회적으로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며 “보험에 가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질수록 문제가 많은 병원으로 인식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 면허를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성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돼야하지만 일반적으로 의료란 완벽하게 완성된 학문이라 믿고 절대적 신뢰를 갖곤 하기 때문에 인식으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환자 및 위험성을 관리하는 인프라 구축과 리스크 매니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병원 내 리스크만을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중간자적 커뮤니케이터와 절대적 신뢰를 갖는 리스크 매니저가 없기 때문에 문제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며 “병원 내에도 리스크를 관리하는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표준화된 고객시스템과 적정진료관리팀·법무팀의 접근성, 밀접화 등이 필요하다”며 “의료사고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크게 발생치 않도록 병원은 서비스 관리를 더욱 신중히 하고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재원의 또다른 비상임위원 K씨도 이에 동의하며 “의료계는 대체적으로 의료소송이나 사고를 대처하는 방식이 미비한 편”이라면서 “전문적 분야인만큼 법적인 책임을 나누는 것이 매우 예민하다. 이 때문에 의료계 내 리스크 매니저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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