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과의사들이 수술 안하는 이유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2022.09.28 06:12 댓글쓰기

[특별기고 1] 얼마 전 서울 소재 빅5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이 발생했는데도 그 병원에서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끝내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와 가족도 비슷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국회에서도 필수의료 분야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2017년 10월 10일과 2018년 4월 24일 '외과계의 몰락' 이라는 주제로 정책 토론회가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대책보다는 임기응변적이고 주변부를 건드리는 대책 뿐이다. 그래서인지 몇 년 지난 후에도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 모집은 매년 미달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필수의료 전공의 미래, 비필수의료 분야보다 암울하고 열악"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 미래는 비필수의료 분야에 비해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심각하게 열악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내외산소 즉,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사람이 생존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고 필요한 의료분야여서 '필수의료' 과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젊은 전공의 모집 결과를 보면 내과는 가까스로 100%를 채웠지만, 나머지 과는 60%대로 모두 미달이었다. 


문제의 시작은 건강보험 모태인 의료보험이 탄생할 때 국민과 의사들 저항을 줄이기 위해 '저부담 저보장 보험체계'를 구축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의사의 의료기술료 대가를 비현실적으로 지나치게 평가절하한 점이 두고 두고 큰 문제가 됐다. 그 결과, 진료 행위를 통해 수익을 보전해오던 내과계열 의사가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수술이나 의료행위를 많이 하는 외과계열 의사들이 더 많은 고통을 떠안았다. 이런 문제를 오랜 기간 방치하는 바람에 수술하는 외과계열 의사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현재 필수의료를 살리는데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가치점수제를 적용, 의사 행위료를 의미하는 의사업무량이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는 것이다. 상대가치점수는 진료비용, 의사 업무량, 위험도 등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2020년 3차 상대가치 개편을 위해 연구된 자료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상대가치점수에 의한 의료행위 총계는 19조 1700억원이며 이 중 의사 업무량은 전체 20%인 4조원이다. 4조원 중에서 의과 공동 규모는 6600억원이며 전문과별로는 마취통증의학과 5200억원, 내과 4900억원, 안과 2900억, 산부인과 1077억원, 정신건강의학과 977억원, 외과 932억원, 흉부외과 238억원 등을 차지하고 있다.


"현행 수가체계 하에서는 수술이나 처치 같은 의료행위 금액 매우 적어"


이 자료를 통해 분석해 보면 의사가 수술이나 처치와 같은 의료행위를 통해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이 적다. 결국 수술을 하는 진료과는 경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개별 진료과를 보자. 외과의사는 현재 약 6000여 명이다. 연간 맹장수술은 1만3000건 정도 실시된다. 맹장수술의 경우 실제 의사 업무량에 의한 비용은 7만5,003원(2020년 기준)이다. 맹장수술을 통해 의사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은 연간 10억원이 되지 않고 이 금액을 6000명이 나누어야 한다는 의미다.


필자는 2022년초 서울 강남구 의료기관을 조사했다. 강남구에는 2월 23일 기준으로 1802개 의원이 있다. 이중 약 70%에 해당하는 의원이 미용이나 성형과 관련된 진료를 하고 있다.


반면 우리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필수의료라고 표현하는 내과의원은 101개, 외과는 34개였고 이중 18곳만 미용성형과 관련이 적은 진료를 하고 있었다.


산부인과는 51곳이 있지만 이중 분만을 하는 의원은 4개소에 불과하다. 그리고 소아청소년과는 34개소 뿐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필수의료 분야 수익성이 절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방 의료기관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대학병원 교수들이 연일 당직을 하면서 환자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은 수도권 병원으로 몰려가는 악순환을 겪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0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외래 이용 횟수가 1위, 입원 일수는 일본에 이어 2위다.


코로나19 와중에 상기도 질환 진료를 많이 한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는 개인 위생이 강화되자 환자가 급감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지만 사망률 증가는 없었다. 외래 이용 환자의 경우 중증질환이 아니라 경증질환이 많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경증질환자는 의료 이용을 자제토록 하고 의료 이용이 어려워질 저소득층은 공공의료기관 이용을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전달체계를 강화하면 지역 의료기관과 1차 의료기관 이용이 늘어날 수 있다.


"의료체계 전반 개혁하면서 필수의료 전문 의료진 예우하고 재정투입 절실"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적 어려움을 겪는 필수의료 의료진에 대한 사회적 예우다.


이를 위해 일부 재정투입이 불가피하다.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은 약물 처방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심층진찰료 같은 제도와 의사 1인당 하루 진료 환자 수를 제한하고 사라진 일당 처방료를 부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의대 정원도 일부 증원해야 한다. 건강보험 기준이나 의료법 기준을 넘어서는 특별한 진료에 대해 의사가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가 동의하면 건강보험 기준에서 벗어나는 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합의 비급여’를 인정해야 한다.


상대가치점수 제도는 필수의료 분야 쇄락을 가져왔다. 상대가치점수에서 의사 행위료를 제외하거나 대폭 상향해야 한다. 만약 그게 안된다면 수술이나 진료행위에 대한 별도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전반적인 변화를 줘야 건강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필수의료 지원을 늘릴 수 있다. 필수의료 살리기는 건강보험제도 정상화다. 이를 위해서는 추가재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험료 증액 및 국고 지원 등은 국회 및 시민단체 등 관련 구성원들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 정책 당국자들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정책에 대한 책임 부담으로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의료를 왜곡하고 정부와 의사, 의사와 보험사의 갈등을 키워왔다. 정책 당국자들과 국회는 해묵은 비정상을 끝낼 전향적 개혁 조치가 수반돼야 필수의료 살리기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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