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의사와 간호사 관계가 심상찮다. 진료현장 가장 근거리에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두 직역의 대립인 만큼 그 귀결점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이번 대립은 ‘업무범위’라는 민감한 명제가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양측 갈등의 골이 여느 때 보다 깊은 모습이다.
이번 정부와 보건의료노조의 합의문이 의사와 간호사 간 갈등에 불을 지폈다. 극적인 협상으로 의료계 총파업은 철회됐지만 그 합의가 새로운 갈등을 불러 일으킨 셈이다.
의료계는 합의안에 포함된 ‘의사 증원’에 반발했다.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지역의사제도 도입 등 의사인력 증원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실제 정부와 노조는 공공의료 현장에 적당한 의사가 배치될 수 있도록 진료환경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공공의사 양성, 지역의사제 도입 등 의사인력 확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의협은 즉각 반발했다. 노정 합의문은 지난해 의협이 총파업을 끝내면서 정부와 체결한 9·4 의정 합의를 위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당사자인 의사가 아닌 노조와 ‘의사 증원’을 논의하고 합의한 부분에 격분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의료노조에는 보건의료인 7만70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조합원 중 60% 이상은 간호사이고 의사는 포함돼 있지 않다.
때문에 이번 합의문에는 의사보다는 간호사의 의견이 반영될 수 밖에 없었다. 의협이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료계 한 인사는 “당사자인 의료계와 소통하지 않은 채 노조와 의사 증원을 논의한 것은 정부의 얄팍한 이이제이(以夷制夷) 계략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복지부가 지난 8월 3일 예고한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개정안은 보건·마취·정신·가정·감염관리·산업·응급·노인·중환자·호스피스·종양·임상아동 등 13개 분야별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전문간호사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지도에 따른 처방 하에 시행하는 처치, 주사 등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분야별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맡게 돼 있다.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 규정은 그동안 간호계의 요구사항이었다. 진료보조인력인 PA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는 만큼 전문간호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의협은 “이번 개정안이 오히려 의사의 면허 범위를 침범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의료법 상 간호사 업무는 ‘의사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로 규정돼 있지만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를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확대해 혼란을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협은 “개정안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할 것”이라며 “전문간호사도 간호사인 만큼 ‘진료보조’ 범위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라고 못박았다.
의사들 공격에 간호사들도 강하게 맞섰다.
대한간호협회는 성명을 통해 전문간호사 개정안이 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불법의료를 조장한다는 대한의사협회 주장에 대해 “자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의협은 개정안이 의사 면허범위를 침범한다고 주장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업무관계에 협력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지 영역 변경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의사 지도에 따른 처방이 간호사 단독 의료행위 근거라는 주장 또한 지도와 처방 주체는 의사인 만큼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간협은 “병원현장의 불법진료는 의사 부족 때문임에도 의협은 정부와 간호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 지려면 지금 보다 10배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고 일침했다.
의사와 간호사의 대립은 장외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의협 집행부는 지난 달 31일부터 이틀 간 복지부 앞에서 개정안 폐기를 주장하며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에 간협은 오는 13일까지 동일 장소에서 1인 시위를 진행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