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 논란으로 촉발된 전공의 집단 휴진이 장기화한 가운데 개별 기관에 따라서는 수백억원이 넘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인건비 전용 가능성까지 조명되고 있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분원 건설이나 설비 투자 등 병원의 미래를 대비한 핵심 자금으로 경영위기 속 절박한 병원계의 심정을 대변했다는 전언이다.
대부분 대학병원이 행정직원 및 간호사인력에 무급 휴가 제안 등 월급 지급마저 담보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들이 이 같은 분위기까지 유발했다는 해석이다.
16일 병원계에 따르면 직원 월급 지급 및 경영난 일시적 해소를 위한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전용을 요구하는 일각의 목소리가 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공익법인이나 비영리법인이 향후 목적사업에 사용하기 위한 재원을 미리 손금으로 계상하는 제도다.
현재 서울대병원이 4월 대출 한도를 1000억으로 확대했고 서울아산병원 및 세브란스병원는 비상 경영체계에 돌입하는 병원경영난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기타 병원들도 무급휴가 제안, 병동 통합운영 등 긴축 경영을 위한 방안들을 대다수 시행 중이다.
한 병원계 관계자는 “대학병원 내부에서 무급휴가를 두고 직원 간 갈등도 존재한다”며 “인력 비중이 큰 병원 운영상 직원 월급 지급을 위해 고유목적사업금의 사용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유목적사업금, 사용 사실상 불가
이미 병원들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사용은 3월께부터 요청됐지만, 사용 주체인 대학은 법적근거 부재 등을 이유로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사용근거가 없고 사용시 분원 무산은 물론 장기투자 및 전략이 크게 훼손되기 때문에 준비금을 일반 직원 인건비로 지출하는 데 대한 부담이 결정적 요인으로 거론된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비영리법인이 의료업을 지속 가능토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인건비 지출로 사용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사용불가론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정부의 현재 비상지원 이외에도 차후 추가적 지원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어 회계상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도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적인 문제도 넘어야할 산이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병원 경쟁력 유지를 위한 시설 및 장비투자와 같은 고유목적사업에 사용하지 않으면 세무상 손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과세소득에 합산, 과세된다. 결국 인건비에는 현재 법적 규정상 사용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병원계 일각에서는 인건비 비중을 생각하면 한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만만치 않게 목격되는 상황이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사용하면 분원 설립 무산 등 초래 가능성
일각에서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과 관련해 분원이 무산될 수 있어 이를 기피하는 것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현재 상당수 대학병병원이 분원을 추진하는 만큼 이를 사용할 시 사실상 분원 추진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법 개정으로 한시적으로 인건비 전용이 허용될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이를 적용할 병원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김원이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서울대병원(경기도 시흥배곧 800병상) ▲서울아산병원(인천청라 800병상) ▲연세의료원(인천송도 800병상) ▲가천길병원(서울송파 1000병상) ▲인하대병원(김포 700병상) ▲경희의료원(경기하남 500병상) ▲아주대의료원(경기평택 및 파주 500병상) ▲고대의료원(경기과천 500개) ▲경기도(남양주 500병상) ▲한양대의료원 경기안산(미정) 등만 6600병상에 이른다.
주요 병원들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 현황을 보면 2022년 기준으로 ▲서울대병원 840억원 ▲서울아산병원 3858억원 ▲인하대병원 903억원 ▲아주대병원 75억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치솟는 건축비와 기타 법적인 제재 등 여러 분원 추진의 악재를 생각하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인건비 전용은 사실상 이뤄지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분위기에서 분원을 이렇게 허용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를 보면 병원들도 고유목적사업금의 인건비 전용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