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산부인과 미래 밝혀주세요!'
김선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2013.04.09 19:02 댓글쓰기

 
과거 서울 지역 내로라하는 의사들의 상당수는 산부인과 전문의였다. 개인 산부인과 의원에서 출발해 의과대학을 가진 대학급으로 성장한 이들도 심심찮게 있다. 출산장려에 따라 환자들은 많았고 배우고자 하는 전공의들도 넘쳤다. 그야말로 최고 인기과 중 하나가 산부인과였다.


격세지감이다. 현대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로 급전환했고 환자들의 급감과 함께 산부인과의 어려움은 시작됐다. 여기에 저수가 정책에 고강도의 노동력과 높은 의료사고 위험성까지  감내해야 하는 산부인과는 이젠 최대 기피과 중 하나로 전락했다.


분만이라는 국가적 소명을 담당하고 있는 산부인과가 이 같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어려움이 계속되자 정부도 고민에 빠졌다. 분만 의료기관이 없는 취약지가 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원정출산 문제는 수 년 전부터 사회적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의 부침을 몸소 느끼고 있는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선행 이사장[사진]은 지금의 산부인과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김선행 이사장은 “산부인과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면서도 “요즘 산부인과의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과거와 달라진 환경에 때때로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다. 출산은 이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라고 한탄했다.

 

“정책 고려 바람직하지만 실효성 높여야”


정부는 최근 분만수가 가산지급 시범운영 지침 고시를 제정했다. 규모는 작지만 분만수술을 계속하는 병원에 인센티브 성격의 건강보험 수가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소규모 분만의료기관이 경영상의 이유로 사라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분만수가 가산지급 대상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합친 분만 건수가 200건 이하인 곳이다. 연간 분만 건수 50건 이하는 200%, 50∼100건 이하는 100%, 101∼200건 이하는 50%의 추가 수가를 받는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는 “분만수가 인상과 같이 정책적인 고려를 해주는 것은 고맙다”면서도 “분만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의사와 간호사 등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한 달에 4건 분만하는 병원들은 애초 유지할 수 없는 구조다. 과연 얼마만큼의 혜택이 돌아갈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4월 8일부터 시행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 제46조 역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는 첩첩산중이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 보상에 필요한 재원을 국가와 의료기관이 7:3으로 분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에 따르면 그 보상 범위는 분만 과정에서 생긴 뇌성마비, 분만 과정에서의 산모 또는 신생아 사망을 대상으로 한다. 불가항력, 즉 무과실 의료사고지만 의사들이 재원을 나눠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의사들은 “명분이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김선행 이사장은 “의료분쟁조정법 제46조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무과실임에도 보상금을 분담하는 내용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의사들의 명예와 소신, 신뢰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지만 법적으로 보상금을 내라고 명시해 놓는 것은 결국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긴 여정이 될 수 있겠지만 헌법소원 등을 통해 바로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의, 불과 年 116명 배출-우리 사회에 적정한 인원인가"


의료분쟁조정법 시행과 더불어 힘겹게 2013년을 시작하게 된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116명이다. 지난해 90명에 비하면 소폭 상승한 수치지만 전공의 지원자가 줄면서 해마다 배출되는 전문의 수도 하락세다.


2001년만 해도 270명이었지만 2008년 177명에서 2012년 90명으로 대폭 줄었고 올해는 116명이 배출됐다. 절대수 부족인 것이다.


김선행 이사장은 “내가 레지던트 하던 때와 비교하면 1/3 수준이다. 과연 116명이란 숫자가 우리사회에 필요한 산부인과 의사 수를 충족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면서 “절대 수 부족에 대한 원인을 총체적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남자 전문의 감소는 산부인과를 더욱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응급 상황의 연속인 분만 현장에서 남자 의사들 역할은 중요하지만 현재는 줄어 희귀한 존재가 돼버렸다. 실제 지난 해 전문의 90명 가운데 남자는 단 10명뿐이었다.


그는 “지금도 남아있지만 예전에는 산부인과 여의사 진료라고 써 붙인 간판이 많았다. 이제는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의 주가가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더욱이 젊은 의사들은 삶의 질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는 경향이 높아짐에 따라 총체적인 어려움에 놓인 산부인과로의 유입과 정착이 쉽지 않다. 이들을 설득할 매력요소가 필요하지만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정부, 젊은 의사들 유인할 근본적 해결책 고민해야”


김선행 이사장은 “돈으로 젊은 의사들을 붙잡을 수 없다. 저수가, 고강도 노동력, 높은 위험도, 의료사고 스트레스, 출산율 하락, 의료분쟁조정법 시행 등 산부인과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정부가 함께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계에서는 경쟁력 찾기에 고심 중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국가적 소명 역할을 이어나가면서도 새로운 활로를 발굴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여성의학과로의 명칭 변경도 마찬가지다.


산부인과학회에서는 지난 해 10월 대의원 총회를 개최하고 진료과 및 학회 명칭을 개명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미혼 여성들이 느끼는 산부인과의 높은 문턱이 명칭 개정을 추진하게 된 결정적 배경이다.


그는 “안하던 것을 하자는 의미로 명칭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생애주기별로 중요한 시점에서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방문해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국내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개명을 통해 산부인과의 문턱을 낮춰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사회적 통념상 산부인과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제 때 산부인과를 찾지 못해 병을 키우는 사례도 적잖다.


김선행 이사장은 “여성들의 평균 결혼 나이가 높아지면서 부인과적 문제가 생길 수 있으나 부담 없이 산부인과를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면서 “개명을 비롯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찾아 산부인과의 미래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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