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패러다임 변화 둔감 대한민국"
프랑스 베르탱社 임원들, 멸균‧분쇄방식 배척 제도 일침
2022.10.13 06:25 댓글쓰기

‘유니크(unique)’라는 단어가 던지는 무게감에 가슴이 철렁했다. 에두른 표현이었지만 내포된 메시지는 날카로웠다. 개성이 넘치는 ‘독특함’의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유례를 찾기 힘든 ‘이상함’으로 들렸다. 최근 한국을 찾은 프랑스 유해 폐기물 처리업체 ‘베르탱(Bertin medical waste)’ 본사 임원들은 “한국은 참 유니크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한국의 문화나 정서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주된 활동 분야인 ‘의료폐기물’에 대한 숨김 없는 평이었다. ‘환경’이 화두인 시대, 전세계는 유해 쓰레기인 의료폐기물의 친환경적 처리방식에 몰두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여전히 둔감한 한국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실제 전세계 의료폐기물 처리방식은 기존 ‘소각’에서 ‘멸균‧분쇄’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소각’ 절대 비중, 저탄소 국제 추세 역행


프랑스 베르탱社 수피안(Soufiane BELKHIRI) 아시아 영업 매니저와 오헬리엉(Aurelien BATAILLE) 마케팅 매니저는 한국의 의료폐기물 정책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국 의료는 이미 자타공인 세계적 반열에 올라있지만 그 의료 마무리인 폐기물 처리방식은 국제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한국은 아직도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의료폐기물을 탄소가 배출되는 소각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외부 반출과정에서의 감염 위험은 당연지사다.


더욱이 님비현상(NIMBY, Not In My Backyard)에 발목을 잡히며 소각시설을 늘리지 못해 의료폐기물 대란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이다.


실제 전국에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은 단 13곳으로, 그 중 5곳은 용량 대비 100%를 초과한 폐기물을 소각 중이며, 120%를 넘는 곳도 3곳에 달한다.


수피안 매니저는 “환경보호와 감염예방 차원에서 병원 내 마련된 별도 시설이나 장비를 통한 멸균‧분쇄 방식을 택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과 상반된 모습”이라고 일침했다.


이어 “이미 프랑스, 미국, 호주 등 세계 각국이 멸균‧분쇄 방식으로 의료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코로나19 이후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도한 진입장벽, 사실상 불가능


국내 의료계는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 최적의 대안으로 병원이 직접 의료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멸균‧분쇄시설’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현행법에도 병원들은 자체적인 멸균‧분쇄시설을 설치하고 의료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 돼 있다.


하지만 멸균‧분쇄시설 설치 기준이 과도하게 제한돼 있어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병원들이 해당 시설 설치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현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는 ‘의료폐기물 배출자가 설치하는 멸균분쇄시설 처분능력은 시간당 100kg 이상 시설’로 명시돼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적어도 700병상 이상 대형병원 정도는 돼야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일반 종합병원이나 중소병원들은 원천적으로 설치가 불가하다는 얘기다.


대형병원들 역시 기준에 부합하기는 하지만 대형 멸균‧분쇄시설 설치를 위해 적잖은 공간이 필요한 만큼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현재 국내 의료기관 중에 멸균‧분쇄시설을 가동하는 곳은 분당서울대병원과 용인세브란스병원, 시화병원, 가천대길병원 등 총 4개에 불과하다.


병원 내 멸균‧분쇄시설을 설치, 운영하면 기존 의료폐기물 처리비용의 최대 70%까지 절감할 수 있음에도 과도한 진입장벽으로 저변화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중소병원의 경우 멸균분쇄시설 설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중소병원들의 경우 최대 70% 이상의 처리비용 절감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불공정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대사관 통해 한국정부에 개선 촉구


베르탱 임원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에 의료폐기물 멸균‧분쇄시설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할 예정이다.


오헬리엉 매니저는 “프랑스 대사관도 기준의 부당함을 공감하고 환경부에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며 “장려해도 부족한 친환경적 처리방식을 규제하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영업을 위해 전세계 80여개국을 방문했지만 단 한 나라도 의료폐기물 멸균‧분쇄시설을 규제하는 곳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멸균‧분쇄시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모순된 행보도 지적했다.


개발도상국 지원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미얀마 등에 멸균‧분쇄 장비를 구입,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 내에서는 이를 규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수피안 매니저는 “프랑스의 경우 병원이 멸균‧분쇄시설을 설치할 경우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며 “전기차 보조금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이 지구촌의 공동과제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도 의료폐기물 처리방식의 패러다임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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