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이 사법부 판단 이후 다시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의료현장과 교육을 책임지는 의대 교수들이 정책 '무모함'을 강하게 비판하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과적된 의대라는 배 침몰 불가피, 그 피해는 결국 국민 몫"
조윤정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고려대 안암병원 교수)은 지난 13일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증원 방식은 의학교육 질(質)을 처참히 훼손하고, 결국 10년 뒤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회장은 의대 증원 정책을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빗대 위험성을 시사했다.
그는 "정원 100명인 대학에 갑자기 200명을 늘리는 것은 배에 허용치를 넘는 짐을 싣는 ‘과적’과 다를 바 없다"며 "과적된 배가 가라앉으면 짐과 사람이 함께 희생되듯,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 결과는 곧바로 환자 안전에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이 숫자가 지니는 무시무시한 의미를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가 무책임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날을 세웠다.
"교육 질(質) 저하가 미래 보건의료 수준을 끌어내릴 수 있는 거 제일 우려된다"
조 회장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교육 질(質) 저하'가 미래 보건의료 수준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솔직히 저도 10년 뒤 배출되는 전문의들에게 내 몸을 맡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며 교수로서의 고뇌를 드러냈다.
의학교육은 교과서 지식 전달을 넘어, 축적된 임상 경험과 환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완성되는 '경험의 과학'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의료는 경험이고, 의학교육은 환자와 함께 하는 것"이라며 "준비되지 않은 증원은 실습 부재와 교육환경 악화를 낳고, 결국 '자격 미달 의사'를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80년대 '졸업 정원제' 악몽 재현…"허송세월 10년 반복될 것"
조 회장은 1981~1983년 시행된 '졸업 정원제'를 언급하며 과거 교훈을 상기시켰다. 당시 대학 정원을 30% 늘린 정책으로 의대 교육현장이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학번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강의실에 앉을 자리조차 부족했고, 해부학 실습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며 "그 부작용을 수습하는 데 의대들이 10년 넘게 허송세월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증원 규모는 그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면서 "과거 한 총장이 '의과대학은 칠판과 분필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던 인식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의대는 환자 역할을 하는 연기자까지 필요한 특수 교육기관”이라며 “생명을 다루는 곳인 만큼 일반대학과는 차원이 다른 자원과 인프라가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 일각에서 제기되는 '예과(1~2학년)는 강의 위주인 만큼 먼저 증원해도 문제가 없고 본과 때까지 준비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조 회장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예과 1학년 때부터 병원에 나가고 의학교육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 시작된다”며 “의사는 과학 발전을 흡수하는 종합 예술가와 같아서, 예과 때부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적 배경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또한 “병원을 짓고 교수를 확보하는 준비가 1년 만에 ‘뚝딱’ 되는 것이 아니다. 예비타당성조사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병원 건립을 전제로 증원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조 회장은 정부가 증원을 강행할 경우 구체적인 대응 계획도 밝혔다.
우선 정부가 증원 근거로 제시한 ‘원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육 수용 능력에 대한 시나리오 검증을 공식 제안하겠다는 방침이다.
이후 국회와 감사원 등 공적 절차를 통해 정책 결정 과정의 적정성과 근거 자료 신빙성을 철저히 검증토록 요청할 계획이다.
또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와 협력해서 각 대학병원 실제 교육 여건을 취합하고 이를 국민에게 상세히 알려나갈 예정이다.
조 회장은 "실제 교육이 가능한지 검증해야 한다"며 "증원 절차 적정성 등에 대해 감사를 요청하고, 법 테두리 내에서 취할 수 있는 과제를 논의해 나가겠다"고 말해 집단행동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러면서 "총장들과도 부딪혀야 하는 힘든 과정이 남아 있지만 의대교육 정상화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며 "진짜 스마트한 리더십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정책 실패를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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