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가 직접 의사와 병원을 평가하는 ‘환자경험평가’가 단순한 만족도 조사를 넘어 병원 경쟁력을 가늠하는 새로운 지표로 자리잡고 있다.
환자 중심 의료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도입된 환자경험평가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2년 단위로 실시되며, 평가 결과가 전면 공개되는 만큼 병원계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21년부터는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 항목에 포함됐고, 제6기 평가는 100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 전체로 확대되면서 평가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5차례 평가에서 상급종합병원 중 전국 1위를 차지한 병원이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 등 이른바 ‘빅5’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2017년 첫 평가에서는 중앙대학교병원, 2차 평가에서는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3차 평가는 인하대학교병원, 4~5차 연속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고 수준 의료진과 진료실적을 갖춘 빅5를 제치고 이들 병원이 환자들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환자는 ‘명의’보다 ‘경험’ 평가
우선 환자경험평가는 의료기술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가 아니다.
환자가 입원기간 동안 의료진과 직접 경험한 서비스를 중심으로 ▲의사 영역 ▲간호사 영역 ▲투약 및 치료과정 ▲병원환경 ▲환자권리 보장 ▲전반적 평가 등을 조사한다. 즉, 얼마나 어려운 수술을 잘하는지보다 환자가 병원에서 얼마나 존중받았는지가 평가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중증환자가 많고 의료서비스가 복잡한 초대형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환자와의 접점 관리가 잘 이뤄지는 병원이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상위권 병원들 공통점은 ‘설명’이었다.
의료진이 검사와 치료계획을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 질문에 성실히 답하며 의사결정 과정에 환자를 참여시키는 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
환자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치료 과정을 반복적으로 안내하는 시스템 역시 높은 평가를 받는 요인으로 꼽힌다.
병원계 관계자는 “환자경험평가는 의료 본질보다 의료서비스 전달 과정을 평가하는 성격이 강하다”며 “결국 소통 능력이 점수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간호서비스 수준 중요·병원장 의지 관건
간호사 영역은 환자경험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 중 하나다.
환자가 호출했을 때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했는지, 통증을 적극 관리했는지, 친절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는지가 세밀하게 평가된다.
역대 1위를 차지한 병원들은 공통적으로 간호서비스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병동별 고객경험 교육을 정례화하고, 환자 응대 매뉴얼을 표준화하는 한편 환자 불편사항을 실시간으로 공유·개선하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환자경험평가는 의사보다 간호조직 역량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위권 병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최고경영진의 관심이다. 이들은 환자경험평가를 단순히 심평원 평가가 아니라 병원의 핵심 경영지표(KPI)로 관리한다.
실제 1위를 차지한 병원들 모두 병원장 주재 회의를 통해 결과를 분석하고, 진료과별 개선과제를 도출하며, 환자 불만 사례를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일부 병원은 환자경험 전담부서를 운영하거나 CX(Customer Experience) 조직을 신설해 의료서비스 전반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환자동선 개선, 병실 안내 강화, 퇴원교육 표준화, 보호자 안내 강화 등 사소해 보이는 변화들도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특히 입원 초기부터 퇴원까지 전 과정을 표준화해 어느 의료진이 담당하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설명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 것이 높은 만족도로 연결됐다는 평가다.
환자 불편 사항을 즉시 해결하는 현장 중심의 개선 활동도 상위권 병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환자경험평가는 의료 질(質)을 모두 설명하는 지표는 아니다.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병원일수록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그럼에도 의료계는 이제 환자 경험이 병원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실제 상급종합병원들은 환자경험평가 결과를 병원 브랜드와 직결되는 핵심 지표로 인식하며 서비스 혁신 경쟁에 나서고 있다.
병원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명의와 의료기술이 병원을 선택하는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환자가 병원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차원에서 환자경험평가는 새로운 의료서비스 새로운 경쟁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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