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대 증원 정책으로 촉발된 의정(醫政) 갈등이 서로 피해를 무릅쓰고 싸우는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예정대로 무기한 휴진을 포함한 총파업에 돌입하며 전면 투쟁에 나섰고, 정부도 집단행동에 나선 의사들을 상대로 업무개시명령과 이를 주도한 대한의사협회 강제 해체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다각적인 처벌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부, 휴진 주도 의협 '강제 해산' 등 초강경 압박 모드 돌입
정부는 지난 18일 대한의사협회를 주축으로 한 의료계 집단행동을 '불법 진료거부 행위'라고 규정하고 의협을 맹비난했다.
특히 법인 감독권을 활용해 의협 임원변경 요구나 법인해산 명령도 가능하다는 초강경 발언까지 내뱉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불법적인 상황이 계속된다면 의협 임원변경이나 법인해산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사단법인에 대한 주무관청 감독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행 민법에 따르면 법인이 목적 이외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 조건에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 주무관청이 그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의료법에서는 ▲의료인 중앙회가 정관에 정하지 않은 행위를 하거나 ▲국민보건 향상에 장애가 되는 행위를 한 때 ▲의료와 국민보건 향상에 관한 협조요청을 받고도 협조하지 않은 때 보건복지부장관이 정관을 변경하거나 임원을 새로 뽑을 것을 명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비영리 사단법인이자 의료법상 규정된 의료인 중앙회로 보건복지부 검사와 감독을 받는다.
전 실장은 "불법적인 상황이 계속 또 확산돼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에 큰 불편을 초래하게 되면 당연히 임원 변경까지 할 수 있다. 관련 절차는 이미 다 규정돼 있다"고 경고했다.
전·현직 임원 압수수색 이어 공정위 신고까지…전방위 처벌 예고
정부는 의정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2월부터 의료계 총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특히 집단행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는 의협을 향해 엄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실제 복지부는 지난 14일 의협 집행부를 대상으로 집단행동 및 교사 금지 명령서를 송부했고, 15일 불법 진료거부를 독려했다며 의협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정부는 앞서 4월 26일에는 전공의 집단행동을 부추긴 혐의로 고발된 임현택 회장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임 회장이 앞서 회장직을 맡았던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 사무실과 충남 아산에 있는 그의 주거지에도 수사관을 보내 혐의 입증을 위한 자료 확보에 나섰다.
3월 1일에는 임 회장을 포함해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박명하 비대위 조직강화 위원장과 노환규 전 의협 회장 등 5명에 대한 소환 조사를 하기도 했다.
정부는 총파업 파급력을 키울 수 있는 개원가를 향한 처벌도 예고했다.
복지부는 총파업 전날인 17일 전국 3만6000여개 의료기관에 진료명령과 휴진신고명령을 내렸고, 파업 당일에는 업무개시명령도 발령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진료를 거부한 의사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부는 또 대학병원장에도 교수 집단 휴직으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라고 요청하는 등 의대 교수들을 향해서도 경고를 날렸다.
의협, 27일부터 무기한 휴진 돌입…의대 교수도 동참 확산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압박에도 의협은 예정대로 18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며 정부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의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6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정부 독재에 맞서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대한민국 의료를 반드시 살리자"며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 수준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의대정원 증원과 의료농단 패키지 강요, 전공의와 의대생들에 대한 부당한 발언을 즉각 멈추라"고 경고했다.
의협은 또 앞서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안 재논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보완 ▲전공의·의대생 관련 모든 행정명령과 처분을 즉각 소급 취소 등을 3대 요구안을 제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을 주축으로 의대 교수들의 휴진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수도권 주요 상급종합병원 교수들이 휴진을 선언하며 투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재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을 선언한 상태다.
이미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전날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다. 서울대병원은 무기한 휴진 첫날 하루에만 외래 진료가 27% 감소했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오는 27일부터 정부가 의료대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할 때까지 무기한 휴진할 방침이다.
서울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의대 교수들도 의협 집단행동과 별개로 휴진을 선언했다.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은 7월 4일부터 일주일간 휴진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휴진을 연장할지는 정부 정책을 보고 결정할 방침이다.
가톨릭대와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도 무기한 휴진을 논의 중이다.
의대생·전공의 "대통령·국가에 1000억원 손배 소송 제기"
총파업과 별개로 의료계에서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준비 중이다.
그간 의료계를 대리해온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지난 5일 "전공의들에 대한 정부 행정 처분이나 형사 처벌 등 법적 위험 부담이 제거되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의대 학생들과 전공의, 교수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정부 의료 농단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대통령과 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1000억원 이상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소송금액은 전공의 1인 3∼4개월치 급여가 1000만원으로 추산되는 만큼 1만 명분인 1000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이 변호사는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전공의를 향해 '복귀를 하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과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대학 총장 등을 대상으로 국가배상법상 공무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