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의료계 옥죄기법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지난해 의료계 총파업에 대한 “보복입법이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의료계 총파업 사태에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던 정부와 여당이 결과적으로는 ‘원점 재논의’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백기투항’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아울러 총파업 여진이었던 의대생들의 의사국시 실기시험 거부 사태에도 정부와 여당이 사상 처음으로 재시험 기회를 부여하며 의료계 주장은 관철됐다.
당시 의사인력 수급 파동 등을 감안해 대승적 결단을 내렸지만 여당 입장에서는 의료계에 대한 반감을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여당의 의료계 보복입법 논란은 일명 ‘의사면허법’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됐다.
지난 2월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살인·강도·성폭행 등으로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는 무조건 취소된다.
운전 과실로 인한 사망 사고로 금고형과 집행유예만 받아도 5년간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형이 끝난 뒤에도 최대 5년까지는 면허를 다시 주지 않는다.
하지만 상임위 의결로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시 됐던 의사면허법은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에서 좌절됐다.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3월 임시회기에서 재논의키로 했다.
비슷한 시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기관이 무과실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료사고 피해구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문 의학지식이 없는 환자들이 의료행위상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만큼 의사들이 스스로 과실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다.
의사들이 직접 의료사고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만큼 의료계 입장에서는 의료분쟁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법안이다.
대체조제 활성화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 역시 의료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약사가 대체조제 후 의사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도 통보할 수 있도록 하고, 심평원은 의사에게 해당 사항을 알리도록 했다.
의·약사 간 정보 공유를 활성화해 국민의 처방조제 편의를 향상시킨다는 취지이지만, 의료계는 약사들의 숙원인 성분명 처방을 위한 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스프링클러 설치법‧안전사고 인증 취소법도 주목
醫 “의사 길들이기, 결연하게 대응해야” 輿 “신성한 입법권, 보복입법 매도 불쾌”
이 외에도 의료계 옥죄기 법안들은 수두룩하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모든 의료기관이 규모와 수용인원에 관계없이 스프링클러 및 제연설비 등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 하는 법을 발의했다.
개정된 소방시설법 시행령대로라면 2022년 8월 31일까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되지만 기동민 의원의 법안은 시행일로부터 1년 이내로 명시하고 있어 그 시점이 확 줄어들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제연설비다. 기존 의료기관의 경우 현실적으로 공간 확보가 어렵고, 막대한 공사비용 역시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음에도 예외없이 설치 대상에 포함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도 우려된다. 해당 법안은 의료기관인증 취소 사유에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추가시켰다.
인증을 받은 의료기관에서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인증 유효기간까지는 자격을 유지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발의 배경이다.
하지만 진료과정에서 불가피한 환자안전사고 마저 인증 취소 사유가 되는 것은 최선의 진료 제공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여당 의원들의 입법 행보에 의료계는 총파업과 의사국시 사태에 대한 ‘보복입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의료계 인사는 “의료계를 겨냥한 법안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의료계에 갖고 있던 앙금이 표출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모든 법안들이 표면에는 국민을 앞세우고 있지만 결국 의사 길들이기”라며 “이렇게 특정 집단을 겨냥한 입법이 동시다발로 이뤄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덧붙였다.
한 의료계 원로는 “예전 의약분업때도 그랬지만 의료계가 결집해서 정부에 이기더라도 잠깐의 승리를 취하고 나면 교묘하고 집요하게 보복입법 및 보복행정이 이어졌다”고 힐난했다.
이어 “의료계가 이런 부분에 대비하지 못하면 100전 100패”라며 “직역이나 직능별로 자중지란할 게 아니라 지금이야 말로 결연하게 결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의 ‘보복입법’ 지적에 대해 여당은 강하게 부인했다. 특정 목적을 갖고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여당 의원 보좌관은 “의료계 총파업 전부터 발의됐던 법안들이 대다수임에도 마치 보복입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입법권은 특정 직역이 아닌 국민을 위해 행사하라고 부여받은 권한”이라며 “법이든 제도이든 상충되는 이해관계는 존재하지만 이런식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