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김민수 기자] 증권가에서 일반적으로 ‘호재’가 나오면 관련 회사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들은 기대감에 부풀기 마련이다.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호재로 평가할만한 결과가 나온 임상 연구 논문으로 인해 소액주주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피부·성형용 레이저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국내 업체 루트로닉이다.
안과 장비 ‘알젠’, 건성 황반변성 치료 효과 탁월?
논란의 중심에 있는 루트로닉의 장비는 ‘알젠’(R:GEN)[사진]이다. 망막 치료 레이저 의료기기인 알젠은 중심성장액맥락망막병증(CSC), 당뇨병성황반부종(DME), 노년성 황반변성(SMD) 치료에 이용된다.
이 중 노년성 황반변성은 황반에 나이가 들면서 드루젠, 망막 색소상피 위축, 맥락막 신생혈관 등에 변화가 생겨 심할 경우 시력 상실까지 초래한다. 건성과 습성 2종류로 분류된다.
소액주주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망막학회에서 알젠이 건성 황반변성 치료에 매우 도움이 된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소액주주 대표단은 “알젠으로 건성 황반변성으로 치료해보니 환자 40%에서 드루젠이 축소됐고, 50%는 더 이상 증식하지 않고 유지됐다”며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엄청난 연구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긍정적인 소식에 대해 회사 측은 보도자료 1편 내놓지 않고 있다”며 “루트로닉은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대지 말고, 소액주주들의 요구를 반영해 적극적으로 외부에 해당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루트로닉 측은 논문결과는 나왔지만 데이터 분석이 아직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고, 논문 저자가 기사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데이터 분석에 따라 임상적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논문 저자인 여의도성모병원 노영정 교수가 본인의 연구결과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회사 주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꺼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저자가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 우리가 마음대로 외부 홍보에 활용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2016년 유상증자 후 투자 진행 상황도 ‘도마 위’
소액주주들과 루트로닉 갈등은 지난 2016년 11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루트로닉은 유상증자를 발표했고, 이에 따른 중국시장 진출·M&A 추진 등 각종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2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 루트로닉이 공언한 계획 중 실현된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소액주주들의 주장이다.
결국 올해 초 소액주주들은 루트로닉 본사 앞에서 1차 항의 시위를, 황해령 회장 자택 앞에서 2차 항의 시위를 진행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소액주주 대표단은 “황해령 회장은 당장 소액주주들과 면담을 갖고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며 “더 이상 순진한 주주들을 갈취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루트로닉 측은 회사 경영이 시시각각으로 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맞서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이 사업 계획이 변경됐다는 사실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숨긴다’는 식으로만 몰아가고 있다”며 “숨기고 있는 내용 자체가 없는데 뭘 더 밝혀야 할지 우리도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임상시험 및 인허가 취득 상황에 대한 양측 시각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알젠과 관련한 각종 현황을 낱낱이 공개하길 요구하고 있는 반면에, 루트로닉 측은 결과물이 나오는 대로 공시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밝히고 있다고 해명했다.
소액주주 대표단은 “건성 황반변성 치료에 대해 유럽에서 허가를 받은 사실을 왜 공개하지 않고 있는가”라며 “일일이 회사와 관련한 호재를 직접 찾는 행동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루트로닉 측은 “한국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병증의 경우 홍보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의료기기 광고 위반 사례에 담겨 있다”며 “아무리 회사에 호재가 되는 내용이라도 의료기기법에 어긋나는 사안이라면 함부로 노출하지 않겠다는 것이 방침”이라고 단언했다.
1·2차 항의 시위 가진 주주들···3월말 예정 주주총회 변수
1차, 2차 항의 시위를 진행한 소액주주들은 3월 말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도 루트로닉 측이 달라진 모습을 모이지 않는다면 더 강한 액션을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루트로닉이 비상식적으로 호재를 감추는 이유는 주가조작을 하는 세력이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제기했다.
소액주주 대표단은 “황해령 회장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 주가조작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추정된다”며 “루트로닉이 사이비종교 집단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주식시장에서 활동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가산이 흔들릴 정도로 어려운 소액주주들을 생각한다면 회사 측은 성심성의껏 해명에 나서야 한다”며 “더 이상 주주들을 기만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동안의 경과 사항을 밝혀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루트로닉은 주가조작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의구심은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판단이라고 일축했다. 소액주주들의 주장과 달리 호재와 관련된 사항은 언제나 발 빠르게 공시해왔다고도 덧붙였다.
회사 관계자는 “전체 주식 중 약 23%가 황해령 회장 지분인데 일부러 주가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신제품 출시, 인허가 획득과 관련한 내용은 하나도 숨김없이 외부에 공개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소액주주들과는 회사 상황을 설명하면서 오해를 풀기도 했다”며 “사업 운영 계획이 일부 변경됐을 뿐 주가조작과 같은 일은 전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루트로닉 주가는 2017년 1월 1만8050원에서 2018년 12월 7340원으로 최하점을 찍은 후 현재 1만1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