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만큼 편법 난무한 분야도 없다'
노환규 의협회장 '국민 불편 없으면서 정부 압박하는 전략 마련 중'
2013.04.11 01:06 댓글쓰기


[기획 3]하루 24시간도 모자라 25시간처럼 쓰는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을 만났다.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각종 현안에 직역 단체 간 이해관계 대립 등 산적한 과제를 풀고자 심신(心身)이 노곤해 보였다. 기자가 만난 날 노환규 회장의 안색에서는 그런 모습이 더욱 역력했다. 이날 의료계 100년史에 획을 그을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바로 대한의사협회 설립 이래 처음으로 회장이 약사회를 방문한 당일이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의 약사회 방문을 놓고 의사들의 반발 글이 인터넷을 달궜다. 동네의원이 살아야 약국도 살고 더불어 의약계 전체 파이를 키우기 위해 맏형으로서 선의(善意)를 갖고 결단을 내렸지만 노환규 회장으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전날 국회서는 야당 의원에 의해 ‘한의약 단독법’이 입법 예고됐다. 노 회장의 표현을 빌리면 잠을 한 숨도 못 잦단다. 사람 목숨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을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과는 전혀 상의없이 법안을 만든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답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일까. 노 회장은 이날 “꿈을 꾸는 것 같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간접 피력했다. 양해를 구한 그는 혈압을 재기까지 했다. 하지만 혈압은 정상. “혈압계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라는 노 회장의 조크와 미소(微笑)로 인터뷰는 부드럽게 진행됐다.

 

Q. 원외(전국의사총연합회)→원내(대한의사협회) 진입 느낌
A. 다르다. 그렇다고 사람이, 마인드가 바뀐 게 아니다. 서로 처한 조직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전략 등이 변한 것이다. 전의총 대표일 때도 마음은 의협과 같았다.(노 회장은 마인드는 절대 안바뀌었다고 거듭 강조) 그때나 지금이나 1순위는 국민이다. 사실 요즘 나한테 실망하는 전의총 회원들이 있다. 하지만 이해해줄 거라고 믿는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잘못된 의료제도는 정치인이 만들고 이들은 소수인 의사보다 국민들에 더 관심이 많다. 전의총 대표일때는 의사의 권리를 찾기 위한 주장을 펼쳤다. 허나 이젠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의협회장으로서 정치인과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부분이 더 크다. 당연히 전략이 바뀔 수 밖에 없지 않겠냐.

 

Q. 의협 회장 되고 보니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어떠한지
A.
사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몇십년 간 뒷걸음질 쳤다. 저수가는 36년간이나 지속됐다. 악순환의 반복은 결국 땜질 처방 때문이다. 가장 근원적인 저수가 해결책 등이 모색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의료공급자(의사)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라 소비자(국민)도 피해자가 됐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의협 정책은 의료의 본질을 회복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서 추진해야 한다. 국민 설득은 절대 단기적으로 안 된다.


지난 2000년대 의약분업 투쟁은 분명히 의사들에게는 단합의 계기가 됐지만 역(逆)으로 국민과 정부에게는 의사를 외면하게 만든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후 13년이상 지속된 정부의 압박은 그 결과물이다. 앞으로 의협 정책과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면 단체행동을 불사하겠지만 방향은 명확하다. 국민은 불편하지 않으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신중하게 이 방안을 그리고 있다.

 

Q. 의협 회장으로서 새롭게 배웠다면 어떤 것이 있나
A. 첫 번째는 의사 및 의협 조직에 대한 진단을 하게 됐다. 현재 진단에 맞는 미래 전략을 마련 중이다. 의사들이 정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국민과 정부는 외면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가 ‘재난적 의료비(가구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경우)’ 지출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정부가 국민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책임을 국민에게 미뤄놓고 다른 나라에 비해 지원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결과적으로 의사도 의사지만 국민도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실례로 3차 의료기관에 가면 환자 본인부담이 매우 높다. 개원가와 병원계의 수급 불균형이 이를 지속시킨 것이고 결국 의료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피해를 봤고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선택진료비도 그런 편법의 하나다. 하루 빨리 편법적인 수가 보전책을 끝내고 정상적으로 수가를 바꿔 놓아야 한다.

 

Q. 리베이트 단절 선언에 찬반 양론이 있는데
A. 리베이트도 대한민국 의료의 굴곡된 편법의 일환이다. 나는 2000년대부터 우리나라 의료에 편법이 난무한다는 글을 써 왔다. 사실 리베이트는 그동안 의협이 회원들 눈치를 보다 보니 입장 표명을 못한 것이다. 이번 선언의 의미는 크다. 일례로 앞으로는 협회가 리베이트를 받은 회원들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므로 회원들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리베이트는 법이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악법도 법’이라 지켜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너무나 많은 문제를 지녔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의사들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 사실 의사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환자나 질환을 대상으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분명히 정부도 현행 수가가 매우 낮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 측에서 수가를 올려도 의료계의 총 진료량은 줄어들지 않는 다고 생각하는 측면이다. 의료계도 앞으로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료낭비가 너무 심하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등의 측면에서 의사들이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 것은 우리 스스로도 반성을 해야 한다.

 

Q. 새 정부 출범했다. 박근혜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A. 건강보험의 근본적인 틀을 바꿔줬으면 한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4대 중증질환 100% 보장보다 더 중요하다. 현행 저부담·저수가를 적정부담·적정수가로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수급 불균형을 재조정하고 개선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어렵지만 국민들은 어쨌든 보장률이 높아지는 것을 원한다.


사실 일본은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인다고 하면 환자나 의사들 모두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사들이 반대한다. 왜 일까? 바로 수가가 적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장률만 높아지면 결국 의사들만 손해 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새 정부는 국민은 물론 의사들도 만족할 수 있는 건강보험 틀을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이뤄주길 바란다.

 

Q. 회원들에 당부
A. 사실 요즘 걱정이 많다. 앞으로 회장직을 과연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때문이다. 업무는 많고 그렇다고 현안, 특히 대외적 사안들이 쉽게 풀리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는 쌓이고. 회원들이 의협 회장이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이 아니라 본인이 참여하고 움직여야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협회 방향과 전략에 대해서는 믿어줬으면 한다. 나 하나, 의협이 아닌 모두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단언하건대 앞으로 반드시 의료계 여건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의 1차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 그동안 안주하고 무관심하고 겁을 많이 냈다. 이 것부터 깨야 한다. 그래도 요즘은 의사들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것이 조금씩 변화의 흐름을 타고 하나로 모아지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과를 이끌어 낼 것이라 생각한다.


노환규 회장은 성향이 무척 다혈질이다. 본인 스스로도 그 것을 인정한다. 열정적으로 비춰지는 것이 긍정적이라면 무모하거나 위치에 맡지 않는 행동이라고 해서 비난받는 것이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긍정적이라면 ‘워크홀릭’이 됐다는 것이다. 보통 월화수목금금금 이라고 하는데 본인은 ‘월화수목월월월’이란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사안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단기적으로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국민을 자주 언급하니까 정치권(국회) 진출을 위한 디딤돌을 쌓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이 대목에서 그는 허허 웃었다)


노 회장은 “그동안 의협이 회원들한테 듣기 좋은 말만 한 것은 잘못이다. 이는 결코 해결책이 안된다. 소위 자기만족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 국민과 함께 회원들도 때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노 회장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투쟁의 결과물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의료계 단합과 발전을 이루면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정부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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