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조치에 의한 피해보상이 기본 원칙이다.”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이 29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근)로 인한 의료기관 피해 보전책을 논의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사진]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이다.
향후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의료기관의 원활한 협조를 이끌어내야 할 복지부가 의료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와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야 복지위 위원들은 복지부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 명확한 철학과 추진 의지를 의심하며 우려 발언을 쏟아냈다.
결국 복지위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복지부에 구체적인 보전책을 강구하라는 요구와 함께 내달 1일 심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추경예산에는 메르스 관련 피해보상 예산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여야 의원, 간접피해 보전 소극적인 복지부 비판
이날 법안소위의 쟁점은 메르스로 인해 환자가 급격히 감소한 의료기관의 간접피해 보전 여부와 그 범위였다.
메르스 관련 장비나 시설 구매비 등 직접피해에 대해서는 이미 보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권준욱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신종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국가나 지자체장의 명령에 의해 조치를 취한 경우는 손실보상 범위에 해당되나 무형적 피해 등 불분명한 피해까지 손실보상에 집어넣기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어 “각종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손실보상위원회를 둬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위원회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지부의 소극적 태도에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이번 손실보상에 따라 앞으로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의료기관이 정부 시책에 얼마나 협조할지 여부가 정해진다”며 “의료인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방향으로 법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남윤인순 의원 역시 “평택성모병원의 경우 자진 휴원을 했는데 다수 의사가 격리돼 병원 운영을 못한 것”이라며 “병원에 대한 행정조치는 없었지만 인력에 대한 조치는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 역시 “예상한 피해가 아니고 예상치 못한 피해다. 굉장히 특례적으로 다뤄야 민간의료기관이 감염병 치료에 나설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환자를 기피할 것”이라며 “이번 추경에 반영하기 위해 서둘러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도 “평택성모병원의 경우 정부 지침이 없어 자진폐쇄 한 것이다. 정부의 뒤늦은 정책으로 피해를 입었는데 직접적 피해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며 따져 물었다.
여야 위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장옥주 차관은 “지금 정리된 것은 정부의 행정조치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에 보상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다만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 기관별로 달라 논의를 하고 있는데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이에 보다 못한 김용익 의원이 “의료기관이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폐쇄한 것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나중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짐작이 되지 않느냐”며 “차관의 발언에 병의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감각이 없는 것이냐”고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무성의한 복지부 태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지난 25일 처음 의료기관 피해보전에 대해 논의한 후 진척된 논의 결과도, 심의를 위한 준비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정림 의원은 “피해보전에 대한 각각의 범위를 설정하고 그 대상 명단이라도 꾸려왔어야 했다. 그에 맞게 기재부에 예산을 요구해야지, 기재부가 주는대로 받아 오면 되는 것인가”라고 짚었다.
이어“보상 여부를 떠나 복지부의 일방적인 태도로는 국민과 의료기관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용익 의원 역시 “귀책 사유로 손실보전액을 감액하면 향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나서는 의료기관이 없을 것이다. 지난번에도 얘기했는데 왜 복지부는 논의 진전이 없나”라고 꼬집었다.
법안소위장인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도 “윤곽이 잡힌 상태에서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다음 법안소위까지 복지부가 안을 마련해 오면 다시 논의하자”며 심의를 마무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