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한 명, 칼 맞아 죽어나가야 되나'
젊은 응급의학도들 목메인 '외침'…심적압박 가중 멍드는 '응급실'
2013.10.14 18:37 댓글쓰기

[기획 1]오늘도 레지던트 한 명이 환자 보호자가 휘두른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인력이 부족해 늘 업무 강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그는 오전 내내 경찰서에 다녀와야 했다. 이를 바라봐야하는 스승들은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제자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스승들은 이러다 ‘대한민국 응급의학’을 지켜줄 제자들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좌불안석이다. 폭력이 싫어 응급실을 떠나는 젊은 의사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매 맞고 멍 드는 젊은 의사들. 경남 S병원, 전남 J병원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전공의들의 질의응답을 통해 자화상을 들여다본다.[편집자주]

 

Q.병원 내 폭력 경험 빈도는


▶경남 S병원 K전공의
일주일에 한 두 번, 많으면 한 달 8건 정도된다. 특히 여름에는 무더운 날씨로 인해 환자, 보호자 모두 불쾌지수가 높아지다 보니 예민해진다. 게다가 대기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소아 환자 부모들과는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울 지경이다.


지난주에는 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난동이 일어났다. 자식이 소아 환자였는데 분명 본인들이 일찍 접수를 했는데 다른 환자를 먼저 치료해준다는 항의였다. 순식간에 의료진의 뺨을 때렸다. 설명을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여자 선생들 같은 경우에는 머리카락도 뜯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전남 J병원 K전공의
응급실에서 폭언은 다반사다. 현재 2년차인데 지난해와 올해 두 번 응급실 폭행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한 건은 검찰로 송치됐고 한 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열상 환자였는데 술에 취해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인턴에게 욕을 했다. 왜 인턴에게 욕을 하냐고 했더니 나의 멱살을 잡고 폭행을 했다.


또 한 건 역시 술에 취한 환자였다. 두 환자 모두 술이 깨고 난 후 합의를 원했지만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애초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 자체가 큰 잘못이다. 더욱이 이들은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이 눈앞에 있음에도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이 막무가내였다.

 

Q.응급실 폭력 사건은 어떠한 형태로 발생하나


▶경남 S병원 K전공의
가족이나 친지를 잃어 일차적으로 감정적인 표출을 할 수 있는 곳이 의료진이라는 점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주취자가 막무가내로 의료진에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답이 없다.(한숨) 중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으면 당연히 경증 환자는 나중에 치료해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알고서도 의료진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시비를 건다. 결국에는 의자를 집어 던지거나 간호사에게는 카트(쇠로 된)통을 던지기도 한다.


 

▶전남 J병원 K전공의

언젠가 한 주폭 환자는 여자 레지던트에게 다짜고짜 뺨을 때리더라. 단순히 뺨을 때린 게 아니라 그야말로 구타다.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이유인 즉, 자신의 여자친구가 복통이 심한테 진통제를 왜 놓아주지 않느냐는 거였다. 그러나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마약류 진통제는 함부로 놓아줄 수 없다. 그 때 구타를 당한 여자 레지던트는 2주 간 병원에 나오지 못했다.

 

Q.법적 조치를 생각하거나 실행에 옮긴 적 있나


▶경남 S병원 K전공의
오전 11시, 지금은 나이트 근무를 끝내고 퇴근하는 길이다. 사실 어제 밤에도 곤란한 일에 처했었다. 열상 소아 환자였는데 봉합술을 시행하고 항생제를 놓고 나니 한 순간 안압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소아 환자가 숨을 다소 거칠게 몰아쉬자 아버지는 “당신이 약을 잘못 넣은 것이 아니냐”며 설명할 시간도 없이 다짜고짜 멱살을 잡았다.


이러다 보면 폭언, 멱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형사 입건까지 생각한 경우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고소하고 고발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맞다. 현행 법에도 명시돼 있듯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역이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여태까지 병원 생활을 하면서 의료진이 그 정도 수준의 법적 조치까지 실행에 옮기는 사례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일이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는다. 나 역시 두 달 전 사건으로 피해자 진술을 위해 경찰서에 가야하는데 아직도 출두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경찰에 내가 신고한 건수는 올해  2건이다. 가장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거다.

 

▶전남 J병원 K전공의
있다. 지금의 아내와 의과대학 학생 시절 만나 현재 응급실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다. 어쩌면 상당 수 전공의들이 이러한 일에 휘말려도 참고 넘어가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결단력을 가지고 진행했다. 이유가 어찌됐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 아니냐. 더군다나 긴박한 상황이 빈발하는 응급실이다.


사실 대다수 경찰들이 폭력 사건이 발생해 병원에 출동하면 화해를 종용한다. 술이 취해 한 행동이니 너그럽게(?) 넘어가자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주변을 봐도 다른 전공의들은 참고 넘어간다. 우선은 번거롭다.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 인력도 부족한데 자리까지 비우면 공백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나는 경찰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장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현행범으로 잡아가지 않는다면 당신 지위와 소속을 확인한 후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Q.응급실 찾는 환자·보호자 특징과 경찰 대응은 어떠한가

 

▶경남 S병원 K전공의
경찰은 당연히 수수방관한다. 오는 것 자체로 고마워해야 할 정도다. 현실적으로 이미 이뤄진 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않고 묵과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안타까운 점은 상당 수의 환자, 보호자가 이런 상황과 여건을 알고 있다는 거다. “설마, 의료진들이 고소, 고발까지 하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의료진들도 점점 맞대응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환자, 보호자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고 거리낌없이 행동한다. 실제로 법이 적용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병원 응급실 곳곳에 “이 곳에서 폭력을 행사했을 경우 벌금, 징역에 처해진다. CCTV가 작동되고 있다”는 ‘주의’ 안내문을 붙여 놔도 소용이 없다.

 

▶전남 J병원 K전공의


중소병원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위험에 노출돼 있다. 나는 이 곳에 오기 전 중소병원에 있었다. 대학병원급 정도면 용역 경비가 있지만 그 곳엔 이마저도 없다. 환자 및 보호자가 난동을 부리면 아예 의료진이 숨어야 된다. 이러한 부분들에 더욱 우려감이 높은 여자 선생들은 웬만하면 규모가 큰 병원에서 근무하려고 하는 경향이 짙다.

 

Q.응급의학도로서 회의감 든 적 있나. 직업 만족도는

 

▶경남 S병원 K전공의
실제로 회의감이 엄청나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누구 한 명이 칼에 맞아 응급실에서 죽어 나가야 해결되는 건가라는 자조섞인 얘기가 나온다.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으니 이 같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서 환자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전혀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허탈하다. 실제 현장에서 못 견디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감정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전남 J병원 K전공의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육체적으로 힘들다 기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너무 크다. 응급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내 아내를 생각하면 더욱 염려스럽다.

하루 하루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그 와중에서도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매 맞으면서 진료해야 한다. “맞을 땐 맞더라도 할 것은 해야한다”는 얘기다. 업무 공백이 생기면 동료 의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Q.폭력사건 발생 시 병원 분위기와 사후 대책은

 

▶경남 S병원 K전공의
폭력 사건에 휘말렸다고 하자. 병원 일이 끝난 후 고소, 고발을 진행시킬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하겠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 응급실 근무는 야간 시간이 핵심이다. 그러다보면 일단 시간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 누구 한 명이 경찰, 검찰에 출두한다고 하면 응급실 진료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핫라인이 구축돼 있어야 하는데 그런 병원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그렇잖아도 인력이 부족한데 업무 로딩은 더욱 가중된다.


여기에 병원에서의 합의 종용은 허탈하기 그지없다. 병원 입장에서는 사건화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병원 이름,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이유다. 때문에 고소, 고발을 진행시키는 것 자체를 마뜩치 않게 본다. 암묵적인 제재를 하는 것이다. 병원 경영진들은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고 말한다. 때론 위로금과 위로의 시간을 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한다.

 

▶전남 J병원 K전공의
의료진 입장에서는 경찰서에 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보안 요원이 있긴 하지만 역할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방어하는 정도이지 밀치기라도 하면 쌍방 폭행에 해당된다.


이렇게 되면 병원 내 보호막이라도 설치돼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병원에서는 성인이고 하니 각자 알아서 하고 만약 고소, 고발을 진행할 경우 법무적인 부분은 법무팀으로 문의하라고 말한다. 다만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행하라고 한다.

 

Q.어떠한 정책 및 제도가 개선됐으면 하나

 

▶경남 S병원 K전공의
폭력이 발생한 것도 모자라 경찰도, 병원도 나 몰라라 하면 속상하기 그지없다. 제3자인 경찰, 환자, 보호자는 그렇다 해도 내가 소속돼 있는 사회적 가족까지 외면한다는 현실 자체가 나를 더 허탈하게 한다.


병원 내 병동이든, 응급실이든 일반 폭력이든 상관없다. 가중처벌법 적용 등 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러한 폭력이 발생했을 때 병원이 일단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각 병원마다 의무적으로 위원회가 꾸려졌으면 좋겠다. 의료진이 진행할 수 있는 고소, 고발 등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전담 변호사 등 시스템이 운영되길 바란다.

 

▶전남 J병원 K전공의
응급실 폭력은 단순히 의료진 폭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료행위 자체가 중단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다른 중환자들은 그럼 어쩌나. 누가 책임질 것인지 돌아보는 게 가장 우선이다. 경찰 인력이 부족하겠지만 파견 형식으로 단, 1명이라도 응급실에 상주를 해준다면 폭력이 다소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응급실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경찰 및 검찰이 반드시 법적 조치를 단행해주길 바란다.


재차 언급하지만 응급실 폭력은 단순 폭력 사건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정부, 사법 당국이 이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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