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씨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인 의대생과 의대 교수 입장에서 정원 확대로 인한 의학 교육 질(質)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현재도 간이의자를 놓고 겨우 수업을 듣거나 실습실을 수십명이 돌려 쓰는 등 열악한 환경을 무시하고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와 대학들의 뜻이 이해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는 ‘의대 정원 추진과 대한민국 의사 미래 토론회’가 열렸다. 의대정원 확대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는 취지로 마련된 만큼 의대생들도 방청석에 다수 자리했다.
“자리 못 잡으면 수업 못 듣고 병원 실습 나가면 짐덩어리 취급”
2020년 의사 총파업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하며 대외 활동을 자제해오던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측도 이날 모습을 드러내 의대생 입장을 대변했다.
우성진 의대협 비대위원장(인하의대 본과 4학년)은 지난해 11월 임시총회를 열고 전국 의대 수업 환경과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공유했다.
우 위원장은 “현재 의대 강의실은 의대 평가인증제도 감점을 피하기 위해 정원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설계돼 있다”며 “유급자가 많은 학년은 자리를 못 잡으면 수업을 못 듣고 간신히 간이 의자와 책상을 욱여넣어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 자치공간 및 복지공간은 오로지 인증평가만을 위해 존재했고 3~4개의 동아리 및 학회가 한 공간을 돌려쓰고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수업 뿐 아니라 학생들의 병원 실습 환경도 열악하다는 설명이다. 우 위원장은 “병원 실습을 돌면 수십명의 학생이 실습실을 돌려 쓰고, 직원들의 동선을 방해하는 짐덩어리 취급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지난해 정부의 의대 증원 수요조사에서 현 정원 3058명의 두 배에 이르는 증원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자 학생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우 위원장은 “학생들이 항의할 때 마다 예산 문제를 운운하며 묵살해놓고 너도나도 두 배씩 증원이 가능하다고 외치는 학교의 모순적인 행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인프라는 그대로인데 정치적 사유·학교법인 금전 이익을 위해 증원하면 부실의대를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대생 늘면 전공의도 증가하는데 대책 무(無)”···교육현장 의대 교수들 의견 ‘묵살’
교육 현장에 있는 선배 의사들도 공감을 표했다. 의대 증원은 열띠게 논의하면서 정작 의대생과 인턴·전공의 교육 대책과 대학 운영을 위한 배후 여력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순철 고려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현재 학생 임상실습은 관찰식 교육에 그쳐, 임상과나 병원을 유람·탐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인턴·전공의 교육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의사를 기르기 위해 의학 교육의 주기별 ‘연속성’ 확보가 필수적임에도 이는 고려하지 않은 채 학교들이 무작정 희망 정원을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이다.
홍 교수는 “급격히 늘어난 학생 수 만큼 전공의 수도 늘어날텐데 졸업 후 교육에 대한 대책이 존재하나”라며 “인턴·전공의 교육비 지원, 전공과목 인원 조정은 시급한 과제다. 단순 증원은 현재 수준의 교육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법제이사(단국의대 교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부회장)도 이번 의대 증원 수요조사에서 교수들의 의견이 묵살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그는 “실제 의대 교수가 증원 요청 결정에 참여한 곳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의료질 평가에는 대학본부가 관여하지 않고 의대 교수들에게 권한이 있다”며 “제자 교육을 평가하고 고민하던 교수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대학본부와 보직자들의 의견이 밖으로 나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도 의대 교육 배후여력을 강조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우 원장은 “의대는 단지 이론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임상 24개 과목 수련·교육이 가능한 800병상 이상 부속병원이 필요한데 이정도 규모 대학병원 배후에는 100만명 이상 상주 인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병원에서 값싼 인건비의 전공의를 더 많이 부리고 싶은 마음에, 이번 증원을 다신 없을 기회라며 정원을 두 배씩 부르는 대학 총장에게 수요 추계 설문조사를 하는 게 타당한가”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