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맘카페’ 병·의원들도 벌~벌
수 십만명 회원 보유 등 영향력 막강···소위 ‘갑질사례’ 등 부작용
2018.10.17 12:20 댓글쓰기

#. “파급력이 어마무시합니다. 그곳에 글이 게재되면 완전 직격탄이에요. 회원 규모도 엄청나다 보니 소문 한 번 나면 끝장입니다.”

#. “좋은 후기를 올려주겠다며 공짜 진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자칫 밉보이면 낭패를 볼 수 있어 웬만한 요구는 들어줄 수 밖에 없어요.”

#. “직원들이 더 가슴을 치네요. 진료대기 문제로 작은 실랑이가 있었는데 당사자가 해당 카페에 악의적인 내용을 게재해 곤혹을 치렀습니다.”

#.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이 환자 눈치 보는 시대는 오래 전이라지만 이제 생존을 위해 인터넷 카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입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원장들은 푸념 일색이었다. 그들의 원망은 ‘맘카페’라는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소불위 권력’이라는 표현과 함께였다.

최근 ‘맘카페 갑질’이 사회적 화두다. 규모가 큰 곳은 회원 수가 20만 명을 넘다보니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점 등 소상공인들이 맘카페에 찍혀 문을 닫았다는 얘기는 비일비재하다.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 사이트에서 부정적인 글이 게재될 경우 직격탄을 면키 어렵다.

초반에는 육아 중인 어머니들의 공간이었던 만큼 산부인과나 소아과 등에 관한 정보교류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진료과목을 가리지 않는다. 호평보다는 악평 일색이다.

개원가 휘어잡는 맘카페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만5000여 개의 맘카페가 운영 중이다. 작게는 아파트 단지, 크게는 시도 및 전국 단위 모임으로 구성되며 카페별 회원도 많게는 수 십만명에 달한다.

맘카페는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지역을 중심으로 서로 육아에 힘든 점이나 고민을 상담하고 좋은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다.

운영이 활성화되자 자연스레 육아를 넘어 병원, 맛집, 부동산, 학원 등 지역 생활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이사 가면 전입신고 후 맘카페 가입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인기가 상당하다.

하지만 영향력이 커지면서 동네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갑질이 속출했다. ‘맘카페에 찍히면 문 닫는다’는 얘기는 현실이 됐다.

실제 몇 해 전 한 임신부가 전국 단위 맘카페에 ‘00음식점 종업원이 임신 6개월인 배를 걷어찼다’고 글을 썼다가 해당 음식점은 매출 감소로 폐업한 바 있다.

당시 경찰 수사결과, 이 임신부가 음식값을 계산하지 않으려고 버티며 오히려 종업원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맘카페의 갑질에 당한 셈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동네의원들 역시 맘카페의 횡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진료과목을 막론하고 맘카페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다.

맘카페의 횡포를 호소하는 병·의원 숫자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특정 병원 치료에 대한 불만, 원장 및 직원 응대에 대한 불만 등이 일방적으로 공유되고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악덕병원으로 내몰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도 상당수다.

동료 원장들의 모임에서 맘카페로 인한 고충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이다. 신규 개원한 원장이나 터주대감 원장 역시 고민은 매한가지다.

이들 원장을 더욱 원통하게 하는 것은 카페에 잘못된 정보가 올라가도 해명이나 반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카페가 가입시 실명과 동·호수 주소를 기입해야 하는 등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반박 글을 쓸 권한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커 대부분 포기하기 십상이다.

한 소아청소년과 원장은 “일단 글이 올라오면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내용이 급속도로 퍼진다”며 “맘카페에 게재된 글의 각인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토로했다.

“더는 못 참아”…반격 나선 원장들

맘카페의 갑질이 도를 넘으면서 원장의 움직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 십만 명의 회원을 등에 업고 갑질을 하는 맘카페에 더 이상 눈치만 보거나 휘둘리지 않겠다는 각오다.

해당 맘카페 운영진에 직접적인 상호명 언급을 차단토록 요청하는 한편 내용증명 등을 보내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원장들의 인내가 한계에 달한 이유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결정적인 계기들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7월 경기도 광주의 한 학원장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블랙박스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지역 맘카페에 올라간 ‘학원 어린이 차량 난폭운전’ 관련 글에 반박하는 영상이었다.

글을 게시한 엄마는 “아이들을 태운 학원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난폭하게 질주했다”고 폭로했지만 영상 속에는 이 엄마가 화물차로 길을 막고 짐을 내리느라 학원차량이 계속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특히 학원장이 “차를 여기에 세워두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하자 블랙박스 속 여성은 아이 키우는 엄마임을 강조하며 맘카페에 글을 올리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

이 모든 모습이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찍혔고 온라인 상에서는 ‘맘카페의 갑질’이라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해당 엄마는 학원장에게 자필 사과문을 보냈다.

경남 진주의 한 맘카페에 올라왔던 악의적인 글 역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아이들을 데리고 고양이 카페에 갔는데 심하게 눈치를 주고 싫어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고양이 카페 사장은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에는 아이가 장난감으로 고양이를 계속 찌르고 머리를 치며 괴롭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됐다. 가게에 대한 오해는 풀렸고, 해당 맘카페의 운영진과 회원으로부터 사과도 받았다.
이러한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원장들도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맘카페의 갑질에 대응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 이비인후과 원장은 “억울함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CCTV 영상 그 이상의 것도 공개할 수 있다”며 “이제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커져만 가는 운영진 고민

이 처럼 맘카페 갑질에 적극적인 대처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해당 카페 운영진들의 고충도 커지는 모습이다.

최근 맘카페 공지사항에는 악의적 게시물에 의한 명예훼손, 고소, 고발 경고문이 게재돼 있다. 우선 회원들 스스로 조심하도록 경고하기 위함이다.

운영진이 게시판을 수시로 관찰하며 글에서 특정 업체를 지칭하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업체에 대한 피해 사례나 불만 글을 아예 게재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맘카페의 경우 이러한 내용의 글을 올린 회원에 대해서는 강제탈퇴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운영진은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악의적인 글 게재 문제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다. 이미 가입자 수가 너무 많고 영향력도 크다 보니 통제가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 고양이 카페의 경우에도 악의적 게시물이 한밤 중에 올라와 운영진이 바로 삭제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커진 사건이었다.

맘카페 사칭도 골칫거리다. 무소불위 권력으로 인식되는 맘카페를 사칭해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일부 사람들로 인해 정상적인 맘카페까지 호도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맘카페 운영진을 사칭해 홍보를 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는 대부분 사기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맘카페 회원들은 카페의 성격이 변질되고 더 이상 엄마들만의 공간이 아니게 된 작금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 맘카페 회원은 “최근 논란이 된 사건들을 보면서 게시글을 맹신하지 않게 됐다”며 “극소수의 그릇된 행동으로 카페의 본질이 흐려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믿지 못할 정보와 비방으로 가득찬 공간이 되길 원하는 구성원은 아무도 없다”며 “이제부터라도 회원들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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