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수익적인 부분에서 적자를 보고 있지만 국내 최고 화상전문병원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화상환자 일상 회복을 돕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묵묵히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2일 제24대 한림대학교 한강섬심병원장에 취임한 허준 화상외과 교수가 데일리메디와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허 병원장은 "51년 역사를 지닌 한강성심병원 수장으로 명을 받아 무겁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대학병원으로 국내 유일한 화상전문병원 전통을 계승해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1971년 '봉사', '헌신', '사회 기여'라는 이념 아래 설립한 한강성심병원은 한림대의료원 모태이기도 하다. 현재 화상 치료 규모, 시설 및 진료 등 다방면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며 국내 '화상치료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허 병원장은 1988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2002년 한강성심병원 레지던트 수료하고 화상외과 임상과장을 역임하는 등 24년간 화상전문병원 경영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화상 진료와 연구 역량 강화하고 표준진료지침 마련 계획"
허준 병원장은 이날 임기 내 핵심 과제로 '화상 특성화 진료 및 연구 역량 강화'를 내걸었다. 병원 존재 의미이기도 한 '화상' 진료에 특화된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겠단 각오다.
허 병원장은 특히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화상 환자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화상은 다양한 합병증을 야기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다학제 진료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는 10여 곳이 넘는 화상전문병원이 있지만 통합적인 진료가 가능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외과나 성형외과 의사가 화상 치료를 하는 곳은 있어도 화상을 위해 다양한 진료과 전문의가 포진한 곳은 한강성심병원이 유일하다.
실제 한강성심병원이 오늘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전문적인 협진시스템에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허 병원장은 "한강성심병원은 화상외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등 관련 진료과가 함께 모여 화상전문 다학제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며 "매년 2000명 이상 급성기 화상환자가 입원치료를 받고, 해마다 1700건 이상 급성기화상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 병원장은 이러한 화상 진료 특성화를 위해 의료인 교육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그는 "모든 의료인이 화상 치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최상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유럽 및 미국 화상 학회에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생체공학을 이용한 새로운 인공피부 개발 및 인공장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연구 역량을 높여 화상 질환 '표준진료지침'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겠단 계획이다.
"화상 진료 수가 정상화 등 정부 지원 절실"
허 병원장은 화상 진료 수가 정상화 등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그는 "한강성심병원은 여전히 경영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며 병원이 직면한 어려움을 전했다.
한강성심병원은 1986년 국내 첫 화상 치료기관인 화상치료센터를 개소한 이래 수많은 화상 환자를 진료하며 '화상치료 마지노선'으로 자리매김 했으나 위상과 달리 수년째 적자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허 병원장은 "한강성심병원은 소위 소신 없이는 일할 수 없는 곳"이라며 지난 2013년 수익성 문제로 폐원을 한 진주의료원 사례를 빗대며 설명했다.
허 병원장은 "당시 공공의료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 진주의료원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결국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해 폐원하고 말았다. 공공의료에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상 진료가 병원이 수익 창출을 하기에 어려운 분야라는 점에서 적절한 지원과 보상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 일반 환자의 경우 평균 재원일수는 5일 정도이나, 화상환자는 그보다 약 4배가 많은 21일 정도로 장기입원 비율이 높다. 무엇보다 화상치료 관련 수가가 저평가 되면서 전공의 기피 현상도 짙어져 의료진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허 병원장은 "우리나라 화상 치료 수준이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더라도 현 보험체계에서는 소신 없이는 할수 없는 분야"라며 "열악한 수가체계는 결국 환자들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료취약지역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하다. 허 병원장은 "이송체계가 발전하면서 헬기를 타고 전국에서 환자가 오더라도, 땅끝 마을에서 오는 환자를 보면 착잡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허 병원장은 "경미한 화상이더라도 전문성에 따라 치료 결과에 큰 차이가 난다"면서 "정부도 여기에 관심을 갖고 제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강성심병원이 적자를 보면서도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학교법인 일송학원 설립자인 고(故) 윤덕선 박사의 뜻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허 병원장은 "화상환자는 1세부터 100세까지 연령대도 다양해 여러 과가 협진 시스템을 띤 종합병원 형태가 돼야 한다"면서 "정부도 이러한 특수성을 인정해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거듭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