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처음 발의 후 20여 년만에 제정된 '간호법'
박대진 데일리메디 편집국장
2024.11.04 05:10 댓글쓰기

장마와 폭염이 지날 즈음 ‘태풍의 계절’이 온다.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중심 부근 최대풍속 17m/s 이상의 폭풍우를 동반한 열대저기압을 통상 ‘태풍(颱風)’이라 칭한다. 


발생 위치에 따라 동아시아 지역은 ‘태풍’, 북중미는 ‘허리케인’, 인도양과 남반구는 ‘사이클론’, 오세아니아는 ‘윌리윌리’ 등으로 달리 불린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태풍은 8~9월에 집중 발생한다. 루사, 매미, 곤파스, 힌남노 등 치명적 피해를 입혔던 초강력 태풍들 모두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한반도를 덮쳤다.


이들 태풍은 중심기압 900hPa, 최대풍속 50㎧ 이상이라는 엄청난 위력과 함께 ‘만조(滿潮)’ 시간에 상륙하면서 피해를 키운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만조(滿潮)는 해수면 높이가 가장 높을 때로, 태풍이 동반한 폭우와 강풍의 위력을 배가시켜 해안가 침수는 물론 해일로 인한 주택 및 각종 시설 파손으로 이어진다.


태풍에 만조(滿潮)는 설상가상인 셈이다. 기상당국이 태풍과 만조의 만남을 경계하는 이유도 피해 발생 우려가 그 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보건당국 역시 극도의 긴장 상황에 맞닥뜨렸다. 전공의 집단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가 7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간호사들까지 파업을 예고하면서 긴장감을 키웠다.


의료대란 사태에서 의사들의 일부 업무를 도맡으며 환자 곁을 지켰던 간호사들의 이탈은 보건당국 입장에서는 ‘태풍에 만조’나 다름 없었다.


8만20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조속한 진료 정상화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총파업 대상 의료기관은 고려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중앙대의료원, 강동경희대병원, 이화의료원 등 사립대병원 19곳을 비롯해 총 61곳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몇 배로 늘어난 노동강도에 번아웃 됐다”며 “의료공백으로 인한 경영위기 책임을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떠넘기지 말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업무 과중, 임금 인상 등은 표면적 이유로, 노조의 실질적 요구는 따로 있었다.


PA(Physician Assistant/전문보조인력) 간호사에 대한 법적 근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겪는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조속히 간호법을 제정하라는 게 주된 요구였다.


그동안 숙원사업인 간호법 제정이 번번히 좌절됐지만 간호사 의존도가 역대급인 의료대란 상황은 법 제정의 최적기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의사에 이어 간호사 마저 의료현장을 떠날 경우 대혼란이 불가피한 만큼 다급해진 정부와 여당이 움직였다.


특히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 간호법 제정을 반대해 온 국민의힘도 입장을 급선회하며 간호사 파업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28일 간호법은 최종 입법에 성공했다.


그것도 민생법안 패스트트랙을 타고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윈원회, 본회의를 하루만에 통과했다. 재적의원 290명 중 ▲찬성 283명 ▲반대 2명 ▲기권 5명의 압도적 가결이었다.


처음 발의된 지난 2005년 이후 19년만이며, 지난해 국회 문턱을 넘었다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지 약 1년 3개월만이었다.


간호법 통과 소식에 총파업이 예고됐던 61개 병원 중 59개 병원이 협상에 합의하며 총파업 우려를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의료대란’이라는 태풍 속에 ‘간호사 파업’이라는 만조(滿潮)를 피한 셈이다.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간호법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진통을 겪은 법이다. 쟁점은 ▲PA 간호사 직위 법제화 ▲간호조무사 학력제한 철폐였다.


PA 간호사 직위가 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 법적 불안정 상태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가 컸다. 


또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특성화고 졸업자’, ‘간호조무사 학원을 나온 사람’에서 전문대 간호조무과 졸업자에도 부여하는 문제를 두고 여야 및 이익단체가 각각 충돌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제정된 간호법에는 PA 간호사 직위 법제화는 포함됐지만 간호조무사 학력제한 철폐는 제외됐다.


PA 간호사 업무범위 및 간호인력 기준, 교육 수련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한 만큼 향후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간호법은 공포일로부터 9개월이 경과되는 시점인 내년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1만 여명에 달하는 PA 간호사를 양지로 위치 시킬 묘책을 내놔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제정된 간호법이 보건당국 오판과 늑장으로 또 다른 만조(滿潮)와 만나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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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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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민주 11.28 03:29
    간호학과 학생으로서 이번 간호법 제정이 통과가 되어 매우 기쁩니다. 작년부터 간호법 제정 시위에도 꾸준히 참석을 해왔는데요. 그렇기에 더욱 뿌듯하면서도 감격스럽습니다. 앞으로 간호법의 내용을 만들어나갈텐데 간호사들의 인권과 업무를 존중받을 수 있고, 부당한 업무가 늘어나지 않는 내용으로 발탁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간호법을 위해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환자를 간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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