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서울 및 수도권에서는 폭언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지방병원에서는 폭행이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의료진을 상대로 한 응급실 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일에는 부산 해운대의 병원 응급실에서 취객이 기물을 파손하고 의자를 마구 휘둘러 의사를 위협한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A 교수는 "대부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조직폭력배 등으로 응급실 전체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는다"고 말했다.
관할 경찰서가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는 커녕 오히려 의료진에 불만을 토로한다는 점은 현장에서 더욱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A 교수는 "경찰이 출동한다 해도 이들은 당장 눈 앞에서 폭력 상황을 목격하지 않는 이상 사태 해결에는 한결같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경찰 역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몸을 사리는 일이 태반이다. 우리나라의 공권력은 거기까지"라고 한탄했다.
병원 자체에서도 응급실 폭력을 막을 묘책에 나서길 꺼려한다. 우선 응급실 전담 인력과 변호사를 투입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병원 자체적으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최근 대학병원 QA팀이 응급실 폭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검토를 진행하고 있지만 어떠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주용역을 주고 응급실 내 배치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 여기고 있다.
현행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법 조항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버스기사 폭행하면 가중처벌하면서 왜 의료진 폭력은 방치되는지…"
부산백병원 응급의학과 B 교수는 "버스 운전기사를 폭행했을 때도 가중처벌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이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고 있는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방치돼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응급실 전체가 마비된다는 데 심각성이 더해진다.
B 교수는 "폭력을 당한 응급실 의사 및 간호사는 최소 두 달 이상은 후유증을 겪는다. 행여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라도 출두할라치면 몇 안되는 인력도 공백이 생겨 응급실 자체가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부작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문의도 문제지만 어렵게 응급의학을 '선택'한 전공의들은 이 같은 일을 치루고 나면 분노 단계에서 직업에 대한 불만족으로 직결되며 일하는 것 자체가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B 교수는 "이러한 일이 자주 발생할 수록 응급실 근무를 열성적으로 할 수 없게 되며 환자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몇십년 째 표류하고 있는 응급실 폭력에 대한 엄중 처벌이 이뤄질 수 있는 법 개정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사들의 근속 년수가 타 부서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통상 국립대병원의 경우 한 부서에서 7년이 평균인데 유독 응급실의 경우는 대략 3년 정도로 나타난다.
그는 "다른 어떤 부서보다도 숙련된 간호사들이 응급실에 배치돼 있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신규 간호사로만 채워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