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두터운 지지층 의료계 '배신감'
취임 1년만에 전면파업…포괄수가제·원격의료 실시 등 강한 '거부감'
2014.07.09 19:01 댓글쓰기

[기획 上]“의사들 노고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생색내기용 제도가 아닌 진정한 개혁을 추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난 2012년 10월 7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박근혜(당시 후보) 대통령은 선거 두 달 여를 앞두고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제1회 한마음의사가족대회'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사진]


박 대통령 발언은 그날 참석한 2만 여명의 의사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의미있는 ‘신호음’이 됐다.


이날 연단에 오른 박 대통령은 “의사들을 비롯해 의료인 가족을 만나면 제일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게 된다. 6년 전 유세 현장에서 테러를 당해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훌륭한 의료진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의료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오직 올바른 의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할 수 있다면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오로지 의사들이 환자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국민들도 건강하지 않겠냐고 되묻기까지 했던 그다.


의사들은 뭉클함을 안고 힘껏 박수를 쳤다. 진정성이 담겨있는 발언이라고 판단했기에 비록 공약이라 하더라도 의심(醫心)은 꿈틀했다.


박 대통령은 “이제 의료시스템을 고민할 때다. 당장 생색내기용으로 몇 가지 제도를 고치는 것보다 의사, 국민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근본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방 제도 개혁이 아니라 보건의료계 전반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기반부터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7000여 명은 공식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새 대통령으로 지지한다며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박근혜 후보의 의료정책은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국가의 지원을 필수적인 진료에 집중, 현행 건강보험체제의 재정 안전성을 유지하는 합리적인 의료정책”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향후 적정수가 반영을 통한 과잉진료 방지 등 국민 건강권 확보를 위한 의료서비스 질 향상에 앞장설 것”이라며 “중증질환에 대한 국민적 부담 감소 및 의료 빈곤계층 지원을 위한 방안 마련에 박근혜 후보와 함께 하겠다”며 낙관적 전망에 힘을 보냈다.


노환규 의협 전 회장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당시) 민주통합당보다는 새누리당의 보건의료 공약이 더 현실적”이라며 박근혜 후보를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 해 12월 19일, 박근혜 후보는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의사들 불만 커지면서 올 3월 전면파업 강행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특별히 의사들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의료계는 새누리당의 주요 지지층으로 인식돼 왔고 대선 직전 7000여 명을 웃도는 의사들이 공식 지지선언을 했을 정도니 당장 어떠한 ‘당근’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작금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2013년 7월 포괄수가제 전면 확대 시행에서 점화된 대정부 투쟁의 불씨는 원격의료 실시, 의료민영화 등으로 금세 옮겨 붙었고 결국 의료계의 불만은 극에 달한 나머지 대한의사협회는 의약분업 이후 14년 만인 금년 3월 10일 총파업을 강행했다. 


올 초 철도노조 파업에 이어 의사들의 총파업은 비교적 두터운 지지층이라 여겨졌던 의료계마저도 박근혜 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확실한 증거다.


당시 전국 의사 대표자 500여 명이 참석한 총파업 출정식에서 이들은 “가치 전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얘기했던 점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취임 전부터 ‘국민 대통합’을 내세우던 박 대통령이 무엇보다 국민건강과 직결된 원격의료, 영리병원 허용 등을 의료전문가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칙이 훼손됐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시의사회 의사 J씨는 “철석같이 약속했던 핵심 보건의료 기조들은 대폭 쪼그라 들어 구호만 남았다”며 “보건의료 분야 공약들 중 제대로 지켜진 게 하나도 없다. 공약이 크건 작건 간에 모두 실종됐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의료계의 성토가 무색하게도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의료산업화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허용이다. 법적인 조처는 모두 마무리된 상태이고 외국인 투자자나 민간기업 등도 일정 조건만 갖추면 정부에 영리병원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라도 의료 민영화가 추진될 가능성은 또 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명목을 달고서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보건의료 등 5대 유망 서비스산업의 규제를 철폐하는 내용의 ‘경제혁신 3주년 계획’을 대국민 담화문 형식으로 발표했다.


그는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병원 규제를 합리화할 것”이라며 “의료기관의 해외진출 활성화를 위해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격의료도 활성화 하겠다”고 단언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의사들이 행간을 읽지 못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나름의 근거가 있다. 어떻게 보면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문재인·안철수 후보와 달리 영리병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다.

 

“전문가와 소통 부재… 의사 전문성·자율성 존중해야”


그렇다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도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여전히 의료계와 소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박 대통령의 지지층이었던 의료계 ‘이탈’의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노환규 전 회장도 “대선 당시를 복기해보면 사실 회원들에게 죄송하다”고 말을 아끼면서 아쉬움을 지속적으로 드러내왔다.


당시 미래의사포럼에 참석했던 한 서울시의사회 소속 한 의사는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국의사가족대회에 참석해 의료인들이 편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공수표로 돌려 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특히 원격의료에 대한 현 정부의 행보에 대해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원격조제도 뒤따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국가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면서 “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진료량의 증가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인데 집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어 붙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의료계 한 원로 인사도 “박근혜 대통령이 거듭 언급했던 기조와 보건의료 공약은 대선 당시 분명 의료계 표심을 집결시켰다고 본다. 하지만 취임 이후 내세운 쇄신, 직능 자율성 존중, 이런 것은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료계와 전반적인 기조가 이렇게 대립적으로 가서는 안된다”며 “앞으로 정부가 의료전문가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데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총파업까지 불사했다는 점은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에도 대화가 불발로 돌아갈 가능성을 높게 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 간 제대로 된 소통 부재 및 일방통행이 초래할 부정적 결과는 자명하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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