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양대단체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의 보험 담당 임원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그 단초가 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대한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차등수가제 폐지’가 기정사실화될 정도로 상당한 무게가 실렸음에도 결국 표결에서 반대가 많이 나와 무산되자 의협 보험이사 전원이 사퇴를 선언한 상황이다.
병원협회 역시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보험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임원진이 건정심에서 내년도 수가인상률이 결정된 직후 일괄 사퇴 결정을 내렸다.
양 협회 보험 책임자 줄사퇴…"협상 등 불공정의 극치" 비난
이례적으로 의료계 양대단체가 잇따라 임원진 사퇴라는 뜻을 밝힌 것은 겉으로는 ‘책임론’의 모양새를 띄지만 건정심 내 결정 구조 개혁에 대한 ‘항의’ 의미가 크다는 해석이다.
1일 의협 관계자는 “이번 차등수가제 폐지 논의에서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위원 구성이 공급자:공익:가입자(8:8:8)의 비율이라고 하지만 전혀 공정하지 않다. 답답할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행 저수가 하에서 의료기관은 어쩔 수 없이 박리다매 진료로 내몰리고 있지 않나”라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차등수가제가 폐지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반대가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일방적으로 한 쪽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공익단체 8인 중에 의료비를 적게 쓰고자 하는 의료소비자와 이해를 같이하는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측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그러면서 그는 “비록 다른 사안이고 시간 차가 있지만 의협과 병협 임원진이 일괄 중도하차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정부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현행 건정심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조에 따라 보험료율, 보험급여, 수가·약가 등을 심의·의결하고 있다. 사실상 건정심 구조개편 논의는 건강보험의 수입과 지출의 중요 의사결정구조 개편에 관한 논의다.
이미 의협과 병협은 그 동안 건정심의 구조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비판해 왔다. 지난 2012년에는 포괄수가제 논의 도중 건정심을 뛰쳐나오며 ‘탈퇴’까지 감행했던 의협이다.
"건정심 운영 취지 갈수록 퇴색되고 의결기구 부적합"
오랫동안 '건정심 개혁'이 제자리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양 단체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또 한 번 비합리적인 의결 과정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역시 당장 눈 앞의 문제에만 집착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문제가 크다고 본 것이다. 건정심은 의결이 아니라 조정·중재기구로서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이들은 공동 입장을 통해 "건강보험정책 최고 의결기구라는 취지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며 "건정심 의결 기능 역시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4년 감사원 보고서에서도 위원 구성 및 운영에 대한 불합리성이 언급돼 있다. 건정심 위원 구성의 문제는 비단 공익위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양 단체는 "건정심에 참여하는 공급자단체별로 각 직역간 입장이 상충되는 문제점이 있는데 한정된 '표결권'만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계를 짚었다.
여기에 매번 수가협상 결렬 시 공급자단체에서 마지막으로 제안한 제시안은 논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패널티를 부과해 일방적으로 상정·처리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이에 양 단체는 가입자와 공급자가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체계를 조속히 구축하기 위해 건정심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중립적인 공익위원을 위촉하라"며 "현재 정부 중심의 건정심이 실질적 중재와 조정이 가능토록 정부 영향력이 있는 단체는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단체는 "2004년 감사원 지적을 포함해 오랫동안 건정심의 불합리함에 대해 지적된 사항을 빠른 시일 내 개선하기 위해 TF를 만들어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