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선 환자가 불편해야 환자가 산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 8일 국회 정책토론회서 '응급실 과밀화' 실태 지적
2024.07.09 05:22 댓글쓰기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구교윤 기자.

"응급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불편해야 합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이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벼랑 끝 응급의료, 그들은 왜 탈출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응급실로 몰려드는 경증환자 때문에 정작 치료가 시급한 응급·중증환자들의 피해가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성토다.


이 회장은 "응급의료는 한정적인 재원인 만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과밀화는 응급·중증 환자와 경증 환자가 뒤섞여 응급실이 포화된 상태를 말한다.


과밀화된 응급실은 의료진 피로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환자에게 양질의 응급처치를 제공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가뜩이나 부족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주된 걸림돌이다.


"경증 등으로 응급실에 누울 자리가 아니라 설 자리 없어, 환자 병원 선택 자율권 제한 필요"


이 회장은 "선진국들 응급의료체계를 보면 모두 이용하는데 불편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환자가 이용하는데 결코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환자들이 누울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설 자리가 없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 회장은 "어떤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경증이니 집에 가라고 얘기할 수 있겠냐"며 "환자한테 병원 선택 자율권이 무한정으로 제공되다 보니 응급실이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또 응급의료 위기는 비단 응급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더라도 배후진료과에서 최종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에 따르면 중증·응급환자 진료 과정은 ▲병원 전 단계(119 신고 및 이송) ▲응급실 초기단계(분류 및 응급처치) ▲응급실 결정단계(진단에 따른 결정) ▲병원 단계(입원, 수술, 퇴원, 전원)’ 순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회장은 "수술실, 중환자실, 병실 등의 문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관리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문제지만 정부에서는 최종치료를 모두 응급실 책임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응급의료는 오래전부터 위기였다. 현장에서 의료진은 수없이 많은 민원과 물리적 충돌을 겪고 있다"며 "문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평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점차 가혹해지는 사법리스크를 해결하지 않으면 응급의학과도 폐과를 하는 것이 맞다"며 "땜질식 처방이 아닌 실행가능한 현실적 정책과 현장 실무자들과 교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정민 서울아산병웡 어린이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교수.

"응급의료 특수성 고려하지 않은 법원 판결에 의사들 상실감 엄청 크고 떠난다"


이날 자리에서는 과도한 사법 판결이 붕괴를 야기하고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응급의료 현장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적 판결로 환자 보기가 두려워진 의사들이 응급실을 떠나고, 전공의 지원자도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교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으면서 자부심을 상실하고 현장을 떠나고 있다"며 "사법리스크를 해결하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응급의료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차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던 응급의학과 의사에 대한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된 데 이어 바 있다.


또 만성신장질환 중증환자에 기도삽관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등 최선의 진료를 하고도 사망하자 5억 원이 넘는 배상판결 등 응급의료 현장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육군 12사단 '훈련병 얼차려 사망사건'에서 응급처치를 한 의사가 환자 사망에 따른 비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해당 의사는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비난 여론에 괴로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류 교수는 "살리지 못한 것은 죽인 것이 아니다. 의료진이 조절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은 보건당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응급의료인이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실제 류 교수에 따르면 한국 의사기소율은 일본 14.7배, 영국 580.6배, 독일 26.6배다.


류 교수는 "더 이상 사명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악순환은 단순한 사명감으로 자리를 지키기 어렵게 하고, 전공의 지원 미달 등 의료진의 회피로 이어진다"며 "실효성 있는 의료사고특례법으로 정당한 치료과정 리스크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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