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비(非) 의료인이지만 보건의료계 한 축을 담당하는 의료기사에 대한 정책 논의 장(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의료서비스가 전환돼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들 의료기사 역할 범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교실 교수와 이근희 대한의료기사총연합회(의기총) 회장은 지난 3일 기자와 만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 중증질환자와 같이 의료기관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의료취약계층을 위해 재가진료와 같은 형태의 의료서비스가 더욱 활성화 돼야 한다”며 이와 관련한 의료기사 역할을 강조했다.
김윤 교수는 “한 해 장기요양보험 수혜를 받는 고연령층이 20만 명,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45만 명으로 추정된다”며 “이들 환자 중 상당수는 지역사회에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왕진, 방문간호, 방문재활 등의 서비스가 적극 확대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유럽에선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재가진료가 적극 시행되고 있다”며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즉 환자가 원하는 모습의 의료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소개했다.
이 회장 또한 이러한 김 교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그는 “특히 의료취약지에 살면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경우 의료접근성이 더욱 저하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살피는데 의료기사 인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의료기사에게 가능한 업무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면한 과제로 현행 의료기사법 개정을 언급했다.
기존 법률은 의료기사가 가능한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의 지도하에’라는 단서를 달았다. 여기서 ‘지도’를 ‘처방이나 의뢰’로 수정하자는 것이 이 회장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재가진료 등 의사가 부재한 현장에서 의료기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환자 돌봄에 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국회에선 이와 관련한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국회 복지위 소속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의료기사법 개정안이다. 앞서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결국 무산된 바 있다.
"의료기사 전문성 강화하고 명확한 업무분장 위한 기구 설립 필요"
이 회장은 이어 "현행 의료기사법의 또 다른 보완점으로 평가위원회 설립을 정하는 조항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의료기사 전문성을 강화하고 명확한 업무분장체계를 작동시키기 위해선 이러한 작업을 총괄하는 법적 권한을 가진 기구가 설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선 각 직역 간의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각각의 보건의료단체가 인력과 관련해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업무범위와 직접적으로 관련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제도 마련은 정상적인 절차 안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며 “가장 좋은 것은 대화의 장이 열릴 수 있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윤 교수는 "기존 보건의료정책위원회가 합의기구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2년 전, 보건의료인력관리법이 제정되면서 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위원회가 출범했는데 아직까지 뚜렷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설립 목적이나 부여된 권한 등을 살펴보면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업무범위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원회의 심의기능과 관련해 '보건의료인력의 직종별 업무 범위와 협업체계 구축'이란 항목을 법적으로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
위원회가 큰 틀에서 방향성을 정한 뒤, 각 직역에 대한 세부 논의를 별개로 이어나가자는 설명이다.
이처럼 의료기사의 업무범위를 논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 이들은 내다봤다.
그동안 의료계, 특히 의사들은 이들 의료기사의 업무범위를 조정 혹은 확대하는 것이 자칫 의료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 회장과 김 교수는 의사들을 향해 "국민건강 관점에서 대화 테이블에 앉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의료서비스 공급자인 의사들은 수혜자인 환자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도움을 줘야 한다"며 "오늘 이야기한 의료법 개정에 대한 논의 역시 국민들 요구와 필요가 있다면 마땅히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사면허에 수반되는 베타적인 권한는 더욱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전제는 사회적 신뢰 차원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권한이 권력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국민 이익에 반하는 권한 수호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