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덕분에' 칭송받고 '정부 덕분에' 파업 의료계
박민식기자
2020.08.06 06:01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수첩] 장마가 예상보다 길어지며 전국 각지에서 폭우로 인한 피해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이 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지난 8월1일 예비의사 한 명이 길 위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빗물에 흠뻑 젖은 그는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 조승현 회장이었다. 그렇게 그는 의료계 총파업의 서막을 열었다.
 
기상청은 금주가 이번 장마의 막바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하지만 분노한 의사들의 파업은 이번 주 금요일(7일)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있다.
 
의대정원 확대를 비롯해 공공의대 신설 등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20년 만에 개원의부터 전공의, 의대생까지 모두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의대 교수들도 공식적으로 전공의 파업과 의대생 수업 거부 등을 이해한다는, 사실상 지지 입장을 내놨다. 사상 유례없는 범의료계 차원의 대정부 투쟁이 예고된 것이다.
 
이 같은 전개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코로나19로 전세계가 시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비교적 효과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성공했다. 방역당국의 공도 컸지만, 병원과 선별진료소에서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일했던 의료진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 같은 결과는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을 던져 코로나19를 막아낸 의사들에게 보답으로 돌아온 것은 ‘덕분에’라는 말 뿐이었다. 대신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비대면진료, 첩약급여화 등 그간 의료계가 부정적 입장을 피력해왔던 정책들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제 의사들은 진료현장을, 의대생들은 강의실을 떠나 거리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그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듯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지역간 의료불균형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의료계가 주장하듯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해 의료비 폭증 등의 부작용만 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차치하고 정부와 여당이 이번 정책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진정 의사들을 코로나19와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들로 존중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행보의 연속이었다.
 
해당 정책은 하나같이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작 정책의 영향을 받게 될 당사자인 의료계와는 제대로 된 의견 교환조차 없었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기진맥진해 있던 의사들은 정부의 급작스런 정책 발표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토사구팽이라는 자조섞인 한탄이 나오는가 하면 폭주하는 정부에 두려움이 느껴진다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정책 발표 이후 의협이 총파업을 예고했지만 돌아온 것은 “방역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고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차질을 주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여당 의원들의 비판과 경고였다.
 
의협에 이어 전공의와 의대생들마저 단체행동에 나설 것을 경고하자 정부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정책 준비‧발표 과정에서 의료계 패싱을 보여준 정부와 여당이 얼마나 진심을 갖고 논의에 나설지 미지수다.
 
실제로 전공의들은 수 개월 전부터 관련 대화를 지속 요청했으나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대전협은 파업 예고 이후 나온 박능후 장관의 대화 제의에 대해 ‘기만’이라며 직격탄을 날리기에 이르렀다.
 
코로나19 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의사들은 진료현장과 선별진료소를 지켰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의사와 의대생들이 파업 깃발을 드는 데는 물론 정책이 불러올 부작용과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는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실제로는 진지한 대화상대로도 여기지 않는 정부에 대한 배신감 역시 이들의 분노를 부추긴 것은 아닐까.
 
의료계 총파업 시계는 쉽사리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논의 과정에서 정책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다퉈야지 모두가 납득할만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빨리 정부‧여당이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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