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오른 '의료감정' 공정성
'의사들끼리 팔은 안으로 굽는거 같다' vs '편파적 진료감정 어려워'
2019.12.06 12:08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의료과실을 둘러싼 환자와 의사간 법적 분쟁이 늘어가면서 의료감정 공정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지 않겠느냐"는 선입견에 근거하고 특히 수술 후 실질적인 후유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감정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정서가 확산되는 추세다.
 

그렇다면 의사들 생각은 어떨까. 이에 대해 의사들은 오히려 "의료감정을 편파적으로 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촉탁한 의료감정은 문서상 기록이 남겨지는데, 추후 문제의 소지 여부가 밝혀질 수 있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선 원칙대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쪽은 ‘억울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의료분쟁에서 양측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의료감정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5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의료사고 전담 국가의 감정기관'을 설립해 주세요"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 11월 27일 시작된 청원에는 약 400여 명이 서명했다.
 

청원인 김동연 씨는 지난 2015년 7월 무릎 부위에 시큰거림을 느끼고 경기도 성남 소재 A관절전문병원을 찾았다.
 

MRI 검사를 한 의사는 그에게 좌측 슬관절 전방 십자인대파열, 좌측 슬관절 내측 반월상 연골판 파열, 좌측 슬관절 외측 반월상 연골판 결손 및 우측 슬관절 전방 십자인대파열, 우측 슬관절 내외측 반월상 연골판 파열 등의 증상을 진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좌측 슬관절 전방 십자인대 재건술과 좌측 슬관절 내측 반월상 연골 부분 절제술, 좌측 슬관절 외측 반월상 연골 이식술 및 우측 슬관절 정방 십자인대 재건술, 우측 슬관절 외측 반월상 연골 봉합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수술 후 김 씨는 통증과 함께 무릎 뼈가 덜렁거리는 슬관절 불안정증을 겪기 시작했다. 15분 이상 걷지 못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진 그는 결국 장애판정을 받게 됐다.
 

환자 "소송 제기했지만 법원 촉탁 진료기록감정으로 졌다" 반발 

십자인대 파열과 반월상 연골판 손상은 후유증이 쉽게 생기는 대표적인 하체부 손상이다. 재활요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소송을 제기한 김 씨는 "의사가 후유증이 없고 회복기간도 길어야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위험성을 주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수술 외 약물 주사치료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며 환자 선택권을 침해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무엇보다 의사가 불필요한 수술을 시행해 상태가 오히려 악화, 일상생활이 어렵게 됐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법원이 촉탁한 진료기록감정 결과는 김 씨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았다.
 

진료기록감정을 의뢰받은 순천향대학교서울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는 "좌우측 슬관절 전방 십자인대가 모두 파열돼 있고 관절의 흔들거림이 동반되고 있어 약물요법이나 주사요법보다는 수술이 적절한 치료방법"이라고 회신했다.

서울성모병원 전문의 역시 "수술 당시 의료수준에 비춰 특별한 과실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감정의들은 김 씨가 호소하고 있는 증상에 대해서도 "김 씨가 받은 수술 후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의료과실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통증을 느끼는 부위인 대퇴사두근은 수술 부위인 십자인대와 반월상 연골과는 무관하다는 의견도 함께 내놨다.
 

의료과실로 볼 수 없다는 진료기록 감정를 받아든 법원은 김 씨 주장 가운데 "환자선택권을 침해했다"는 과실만 인정하고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 명령했다.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이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재판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질적으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인데 감정결과는 문제가 없다고 하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과실을 둔 법적분쟁은 결국 감정결과가 절대적인데,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지금 상황에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진료기록 감정을 맡은 의사는 해당 부위를 만지지도 않은 채 서류만 보고 자각증상이 있는데 타각증상은 없다고 하니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란 생각이 들게 됐다"고 털어놨다.
 

특히 수술의가 의사단체 임원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혹시나 '제 식구 감싸기'가 있었던게 아닐지 의심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의료사고는 현업 의사가 의료사고에 대해 감정하기 때문이라는 불공정할 수 밖에 없지 않냐"며 "비싼 감정료를 지불하며 의사들이 빠져나가기 위한 변론서류를 만들어주는게 의료감정이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김 씨에 따르면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 다른 환자는 후유증 등으로 2년째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민사재판 이후 김 씨는 현재 1심에서 혐의 없음 판결을 받은 형사소송에 대해 항소를 준비 중이다.
 

의료과실을 둘러싼 법적분쟁 과정에서 환자들이 감정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의사들 간 암묵적인 '봐주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 역시 오래 전부터 나왔다.

의사 "법적 기록 남는데 불이익 감수하면서까지 진실 왜곡 드물어"
 

하지만 의사들은 이러한 세간의 인식에 대해 “법적 기록이 남는 감정에서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도울 이유도 없고, 오히려 의사들끼리 더욱 엄격해진다”고 말한다.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흔히 의사들 사이에는 강력한 이너써클(inner-circle)이 형성돼 법적 분쟁 과정에서 서로 사정을 봐주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편견에 불과하다. 같은 분과 의사라도 잘못된 판단할시 불이익이 남는 공적 업무에서 사정을 봐 줄 이유가 없으며, 특히 대학병원과 개원의 사이는 환자와 의사만큼이나 거리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들 입장에선 일방적인 감정결과에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부분에는 공감했다.
 

박 대변인은 “소송까지 간 절박한 상황에서 본인이 직접 이해하기 어려운 의료감정 결과에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복수의 의료감정에서 잘못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으며, 납득할 수 없는 경우 의료감정을 한 번 더 받아보는 것이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의료감정을 둘러싼 계속된 의사-환자 간 갈등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신뢰성 있는 의료감정기구’가 필요하다고 김 씨와 박 대변인 모두 입을 모아 강조했다.
 

김 씨는 “의료감정 결과에 의문을 갖고 고충을 겪는 환자들이 없기 위해선 국가가 운영하는 별도 의료감정 전문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료감정 기관 종사자는 사건의 당사자를 전혀 알 수 없도록 하고, 사건 당사자들도 의료감정기관의 누가 그 감정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음은 물론 의료감정서도 담당자가 아닌 기관장 명의로 제출토록 하며, 설립된 의료감정기관의 담당자들은 높은 보수를 지급하되, 다른 일과 겸직할 수 없도록 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기관으론 현재 한국의료분쟁중재원이 있지만 김 씨는 “동일한 사안에도 다른 감정결과가 나오는 사례가 있는 등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변인은 ‘의료감정을 둘러싼 갈등이 불식되기 위해선 감정기관 및 의료계와 환자 간 신뢰를 장기간 쌓아나가야 한다“며 ”공정한 감정기관의 많은 시간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해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산하에 의료감정원을 개원했다.

의료감정 과정에서 법조계, 학계, 언론계 등 비의료인이 참여하고 있는 중앙위원회의 개입을 통해 최대한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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