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없는 '전문병원'
군·경찰과 달리 설립 무산···政, 소방전문치료센터 지원으로 방향 선회
2016.07.16 06:55 댓글쓰기

재난이 발생하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이들이 있다. 화재나 사고가 발생하면 출동해 불을 끄거나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공무원이 그 주인공이다.

소방관은 경찰, 군인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국민의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같은 국가공무원이지만 소방관은 경찰이나 군인과는 차이가 있다. 군병원이나 경찰병원은 있지만 소방병원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국민안전처를 중심으로 소방전문병원 설립이 추진됐지만 예산 문제로 무산됐다. 또한 정부에서 소방전문치료센터를 지정해 운영 중이지만 소방관이 치료를 받을 때 별다른 혜택은 없다.

이에 정부는 소방전문병원보다는 기존 소방전문치료센터를 활용한 진료비 지원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소방 전문병원 과연 필요한가

소방병원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1,000억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는 경찰병원을 비롯한 소방전문치료센터 67개소를 지정해 운영 중이다. 그렇지만 일선의 소방관들은 소방전문치료센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5년 고려대 보건과학대 김승섭 교수가 연구한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1일 이상 요양이나 병원치료가 필요했던 소방관은 응답자 7,888명 중 17.1%인 1,348명이었다.

그러나 김 교수팀의 연구에서 ‘소방전문치료센터 지정병원이 어디인지 모른다’고 답한 소방관은 응답자 7,627명 중 절반이 넘는(53.8%)인 4,103명이나 됐다.

34.5%인 2,634명은 소방관은 지정병원이 어디인지 알고 있으나 이용한 적이 없다고 답했고, 지정병원이 어디인지 알고 이용해본 적 있다는 대답은 4.6%인 347명에 불과했다.

소방관들은 소방병원의 필요성에 적극 찬성하고 있었다. 소방병원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7,631명 중 96%인 7,328명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이다.

이처럼 소방전문진료센터가 유명무실한 이유는 센터에서 소방관에게 주는 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소방전문진료센터 지정병원에서 소방관이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 일부 감면이 있을 뿐이다.

김승섭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경찰병원 비롯한 소방전문진료센터가 지정돼 있으나 소방공무원의 특수한 직업환경에 대한 이해를 갖춘 직업환경 전문의가 부족한 실태이고 근무지역과의 물리적 거리로 인해 접근성이 떨어져 이용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 소방관은 “(소방전문진료센터는)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 병원이 할인만 될 뿐 너무나도 멀다”며 “그냥 동네 의원에 가고 말지 그곳까지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장의 의견들 때문에 소방병원보다는 소방전문진료센터의 활용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소방병원이 전 현직 소방공무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화상진료체계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병원경영학과 이상규 교수는 ‘소방병원 건립 검토를 위한 기초조사 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소방병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소방전문병원 건립은 소방관의 업무 특수성을 감안한 화상, 외상 치료, 근골격계 질환, 스트레스 관련 정신질환, 재활치료와 특수건강진단 기관 확보에서 필요한 사업”이라며 “다만 소방공무원의 재활치료 담당은 물론 지역사회 진료를 제공해야 한다. 외상, 화상, 응급의료 서비스를 특화해 소방공무원 복지와 공익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예산 문턱 못 넘었던 소방병원

사실 그동안 소방병원 설립의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왔다.

소방병원 설립은 지난 1992년 당시 내무부의 주요 시책 중 하나였고, 2002년에는 대한화상학회, 대한외상학회, 대한응급의학회가 함께 소방병원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병원 설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치권에서도 소방병원 설립은 종종 등장한 이슈였다. 2010년도에는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가 소방병원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낙선으로 무산됐고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이 몇 차례 있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처럼 표류하던 소방병원은 지난 2013년 은행권 노사가 임금인상분을 화상환자 치료를 위한 전문병원 지원에 쓰기로 합의하면서 전환점을 맞는 듯 했다.

은행권 노사는 총 332억원을 화상전문병원 설립에 지원하기로 했지만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문제로 소방병원 설립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결국 정부와의 줄다리기 끝에 소방병원 설립은 백지화됐고, 은행권은 출연한 금액을 소방병원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로 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데일리메디와의 통화에서 “소방관들이 화상을 자주 당하는데 전문병원이 하나도 없어 제대로 된 화상병원을 설립하는 데 돈을 출연하기로 합의했다”며 “당시 소방방재청과 협의해 병원 설립 논의를 진행했으나 기재부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소방병원을 설립하는 데 1,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때문에 은행권에서 내놓은 300억여원만으로는 소방병원을 설립할 수 없었다”며 “기재부에서 관련 예산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은행권에서 거금을 출연했으면 정부에서도 병원 설립에 대한 의지를 보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뒤 은행권의 소방병원 설립 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덧붙였다.
 

현실적 대안, 소방관 진료비 지원

현재 정부에서 소방병원 설립 논의는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소방방재청이 재편된 국민안전처는 “소방병원 설립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기존의 소방전문진료센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정부가 기존의 소방전문진료센터를 활용하려는 것은 정부가 소방병원을 설립하더라도 소방관의 화상치료를 기존의 화상치료 병원의 수준만큼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소방전문진료센터로 지정된 병원들이 소방관들을 치료하고 그 치료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국민안전처 소방정책과 관계자는 “화상치료하면 한강성심병원이 최고인데 정부에서 소방병원을 설립한다고 해서 그 인프라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며 “때문에 소방병원 대신 소방공무원들에게 질병이나 부상이 발생했을 때 인근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고 본인부담이 없도록 의료혜택을 지원하자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조성철 안전예산과장도 지난 6월 24일 국회에서 개최된 ‘소방병원 건립 문제점 및 해결방안 토론회’에서 “소방병원처럼 특화된 병원을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경찰병원도 연간 300억원씩 적자”라며 “토론회에서 나온 현장 의견들을 참고해 소방관 관련된 정신건강 예산을 편성하는 방안을 고민하겠다. 정부도 소방공무원 복지나 치료 지원에 대한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방전문치료센터에 국가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법률적인 근거는 마련돼 있다.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기본법에 따르면, 국민안전처는 소방전문치료센터를 지정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여기에 소방관 진료비에 대한 예산도 증액될 것으로 보인다. 소방관의 진료권 향상 등을 위해 기재부에서도 예산을 증액하기로 한 것이다.

안전처 관계자는 “올해까지 안전처에서 소방공무원 치료비나 심리상담 등에 대한 연간 지원금이 15억원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기재부에서 이를 30억원으로 증액 편성할 계획”이라며 “국가에서도 소방공무원의 직업 특성을 감안해 치료비, 심리상담비를 증액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현재 소방병원 설립 논의는 중지된 상태지만, 기존의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활용해 소방관 치료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40개소인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재난거점병원으로 활용하면서, 소방관 등 재난 관련 공무원에도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임호근 응급의료과장은 “소방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의료적 지원을 어떻게 할지가 문제다. 소방병원을 설립해도 의료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병원 한 곳 설립으로 소방공무원 지원이 어렵다면 권역별로 소방공무원의 외상과 화상치료를 지원토록 하고 정부도 그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전문병원 설립 논의는 중단됐다. 그렇지만 소방관의 진료권 확보를 위한 제도적 개선은 여전히 남겨진 숙제다.

정부 지원이 가능해진다면 어떤 규모로 어떻게 지원할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활용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세부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마침 20대 국회가 개원하며 관련 논의에 불씨를 당길 수 있게 됐다. 현장에서 몸을 던지며 국가 안전에 힘쓰는 소방관들의 진료권 향상을 위한 논의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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