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기관 해외진출을 적극 독려하고 있지만 엇박자 법령 탓에 정작 외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병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법 대로라면 의료기관들은 해외에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운영 중인 병원을 폐업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의 발단은 일명 ‘1인 1개소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제33조 8항이 개정된 201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료법은 ‘의료인은 2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에서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두 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로 개정됐다.
네트워크 형태의 병의원 조직을 이용한 광범위한 환자유인, 과잉진료, 기타 불법진료 등을 규제하기 위한 법 개정이었지만 파장은 엉뚱한 곳으로 번져갔다.
이 법의 핵심은 ‘개설 금지’였던 범위가 ‘개설 및 운영 금지’로 확대된 부분이다. 즉 의료인이 동시에 2개의 의료기관 개설은 물론 운영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때문에 의료법인이나 의료재단, 학교법인 등의 운영진에 포함됐던 의사들이 대거 직함을 잃거나 이사회 참여를 포기해야 했다.
의료법인의 복수 의료기관 설립 허용 역시 비의료인은 가능하고 의료인은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법인을 운영하던 수 많은 의료인들이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4년 간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좀처럼 공론화 되지 못하던 이 조항이 최근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임박해지면서 병원계 화두로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만약 합헌 결정이 나오면 엄청난 후폭풍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이 조항대로라면 한 명의 의료원장이 산하병원의 운영에 참여하는 국내 대형병원들이 대거 위법 상황에 놓이게 된다.
본원 원장이 산하 병원장 인사권을 갖고 있는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가톨릭의료원 연세의료원, 고대의료원 등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이 포함된다.
이들 병원의 불법성이 인정되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받게 된다.
의료기관들의 해외진출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밖에 없다.
의료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지난 6월 23일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지만 정작 의료기관 개설은 의료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즉 국내이든 외국이든 의료인은 1개의 의료기관만 개설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쪽에서는 해외진출을 장려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처벌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법률 상황이다.
조만간 의료법 33조 8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병원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다.
한국의료재단연합회(회장 정영호)는 25일 헌법재판소에 ‘1인 1개소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정영호 회장은 “합법적으로 복수의 의료기관 운영 등에 참여하던 의료인이 한 순간에 불법행위자로 전락했다”며 “현재 정상적인 경영에 큰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불법을 차단한다는 법 취지는 동의하지만 정상적인 의료법인과 극단적 영리성을 띤 불법 의료기관들과는 엄격하게 구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병원협회(회장 홍정용) 및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회장 박용우) 역시 “해당 규정이 원래의 입법 목적에 부합한지, 지나치게 의료인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 역시 헌법재판소에 1인 1개소법의 문제를 담은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