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개국 환자 발생 코로나19···'팬데믹' 명명될까
WHO '확정 이르다' 유보적···'사회·경제적 대응 준비 상황 고려 필요'
2020.03.11 12:07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성은 기자] 전세계 102개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가운데 코로나19를 세계적인 대유행 상황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美 CNN, 이달 9일부터 팬데믹 용어 사용
CNN은 지난 9일(현지 시각) “오늘부터 코로나19 발병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팬데믹이란 용어를 쓰겠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를 쓴 CNN 의학담당 수석 기자인 산자이 굽타는 ‘왜 CNN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사태를 팬데믹이라고 부르는가?’라는 기사에서 “많은 전염병 학자들과 공중보건전문가들은 세계가 이미 팬데믹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10만 명을 넘기고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 여러 국가에서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코로나19가 퍼졌고, 코로나19 발병이 시작된 중국 외 국가들의 신규 환자 수가 중국 내 신규 환자의 거의 9배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같은날 “팬데믹 위협이 현실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발표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9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이제 코로나19가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WHO는 여전히 현 상황에서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명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코로나19는 역사상 처음으로 통제될 수 있는 첫 팬데믹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 바이러스에 좌우되지 않는다. 결단력 있는 조기 행동으로 바이러스를 둔화시키고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서 보고된 사례 8만건 중 70% 이상이 회복돼 퇴원했다. 총 사례 수와 국가 수는 전체 내용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사례의 93%가 단지 4개국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확진자는 주로 발원지인 중국을 비롯해 한국과 이탈리아, 이란 등에 몰려 있다.이는 세계적 수준에서 불균등한 전염병”이라면서 “나라마다 시나리오가 다르므로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WHO "치명도·공포감 과장 우려"···최초 팬데믹 정의는 스페인 독감 기준

팬데믹은 WHO 전염경보 6단계 중 최고 단계를 뜻하며 전(前) 단계인 에피데믹보다 광범위한 영역에 퍼지는 특성이 있다. WHO는 감염병을 위험도에 따라 여섯 단계로 분류한다.

1단계는 동물에 한정된 전염, 2단계는 동물 간 전염을 넘어 소수 사람에게 전염된 상태, 3단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이 확산한 상태를 의미한다.

4단계는 사람들 간 전염이 급히 퍼진 상황이고, 5단계는 전염이 널리 번져 대륙 내 최소 2개국에서 병이 유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WHO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19는 5단계인 에피데믹 수준이다.

세계적 대유행을 뜻하는 6단계인 팬데믹은 2개 이상 대륙에서 전염병이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특정 전염병에 대한 WHO의 팬데믹 선언은 이와 같은 단순한 정의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정의에만 따른 팬데믹 기준은 ▲강력한 전염성 ▲사람 대 사람 간 전염 ▲동일한 전염병이 2개 대륙 이상에서 발생할 것이며 코로나19는 이미 해당 조건에 모두 부합한다.

WHO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WHO는 6단계로 구성됐던 인플루엔자에 대한 팬데믹 체계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런 변화는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A(H1N1)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때문”이라고 밝혔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당시 WHO는 과거 기준에 맞춰 팬데믹으로 공표했으나, 전염성은 크고 치명률은 낮았기에 공연한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WHO 관계자는 “팬데믹에 대한 정치적 대응과 경제적 지원 조치가 준비됐는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도 “팬데믹이란 단어를 신중하지 않게 사용하는 것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 불필요하고 모호한 공포와 시스템 마비만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Vox의 켈시 파이퍼 기자는 ‘왜 WHO는 코로나19를 팬데믹이라고 부르지 않는가’라는 기사에서 “팬데믹 정의에 있어서는 얼마나 많은 사회 부분들이 감염 통제에 참여하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기존의 이론적인 팬데믹 정의에서는 치사율 등 병의 심각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는 팬데믹으로 정의됐고 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가 감염됐다. 하지만 당시 신종인플루엔자 사망률은 평균 0.02%로 치명도가 낮았고 의료시스템 마비 등 사회적인 피해도 비교적 적었다.

하지만 사스나 메르스의 경우 사망률이 각각 10%, 35%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지만 광범위하게 전파되지 않아 팬데믹으로 명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WHO에서 첫 번째로 팬데믹으로 정의한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사망률과 전파범위가 모두 컸다. 당시 세계 인구 25%가 스페인 독감에 감염됐으며 최소 40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WHO가 팬데믹으로 명명할 시 스페인 독감의 경험에 맞춰 공포감과 사회적 대응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WHO는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정의하는데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코로나19, 팬데믹 결정되면 출입국 제한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방역 전환

향후 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정의할 시 감염병 대응 체계는 국가 간 경계를 완화시키고 국제적인 단위로 기능하는 방식으로 마련될 예정이다.

현 단계인 에피데믹 단계에서는 특정 지역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나머지 지역은 감염이 전파되지 않도록 해당 지역을 차단하고 지원을 보내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명명되고 이에 맞는 대응을 하게 된다면 이미 전세계적으로 감염이 진행됐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입국 제한 및 금지 등 국가 간 봉쇄는 상당부분 의미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방역 당국은 다른 지역에서 확진자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것 대신 각 국가 및 지역 안에서 소위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도모하게 된다.

세계 각국은 의학적 지식과 전문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하는데, 모든 지역에 감염병이 창궐한 상황이기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제공할 장소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사회 감염이 진행되면서 팬데믹 조치에 해당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중심 대책 등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출입국 상황도 상당히 강화됐으며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변화가 예상된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0일 오후 정부브리핑에서 “이탈리아 등 감염 발생 국가에 대해서는 출국 시 증상을 확인해 비행기 내 감염 등까지 막는 방향으로 대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도 “코로나19는 출입국을 막는다는 게 효과가 없다는 건 이미 알려진 얘기다. 출국 전과 해당 국가 도착 후 건강상태 확인, 이상이 있을 땐 타국에서도 검사받는 체계 등 국제적인 공조체계를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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