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0년 ‘미나마타협약’이 발효되면 수은혈압계가 의료기관에서 퇴출된다. 의사들은 100년 이상 사용된 수은혈압계 대신 가정에서도 쓰고 있는 전자혈압계를 대신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전자혈압계에 대한 정확도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외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제각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3년 후 수은혈압계를 전자혈압계로 전부 대체해도 혼란은 없는 것일까. 의료계 등에서 제기되는 전자혈압계 논란을 짚어봤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 2013년 각 국의 수은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미나마타협약’을 채택했다. 1956년 일본 미나마타병 사태로 수은의 심각한 신경독성과 환경 파괴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비료공장에서 유기수은을 바다에 방류, 오염된 어패류를 섭취한 주민 2265명에게 미나마타병이 집단 발병했다. 현재 620여명이 유기수은 중독으로 인해 아직도 사지 마비, 발음 장애를 겪고 있으며 투병 중이다.
미나마타협약은 128개 서명국가 중 50개국이 비준하면 90일 이후 발효된다. 현재 미국 등 38개국이 비준했고 유럽연합(EU)이 이를 완료하면 50개국이 충족된다.
EU는 올해 9월 개최되는 제1차 수은 당사국 총회 이전까지 비준을 끝마칠 계획이어서 협약은 금년 하반기 발효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14년 12월 ‘보건의료에서 수은 체온계 및 혈압계 대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환경부는 2015년 12월 ‘수은관리 종합대책(2016∼2020)’을 수립하고, 올해 3월에는 ‘잔류성오염물질관리법(구잔류성유기오염물질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오염물질 종류에 수은을 포함했다. 수은 노출 및 중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관리기준도 마련했다.
미나마타협약에는 혈압계, 체온계 등 수은 함유 제품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따라 일선 의료기관은 수은혈압계를 전자혈압계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임상고혈압학회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이미 수은혈압계 유통은 지난 해 금지됐고, 겸용 사용 기간도 오는 2019년이면 종료된다.
3년 후면 수은혈압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가정에서 사용 중인 전자혈압계가 대신하게 된다. 문제는 전자혈압계의 정확도다. 국내 의사들은 수년 전부터 환자가 가정에서 측정해 온 혈압 수치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집에서 재는 혈압 '반신반의'
대한고혈압학회가 2016년 2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전국 종합병원과 의원에서 고혈압을 진료하는 의사 3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가정혈압 수치가 정확하다고 생각한 비율은 35%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정확도가 보통이다(54%), 정확하지 않다(10.3%), 전혀 정확하지 않다(0.6%)고 답했다. 신뢰도가 낮다 보니 의료진의 55%는 환자에게 가정혈압 측정을 권유하기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은혈압계와 전자혈압계의 정확도를 직접적으로 비교한 연구 결과도 있다. 캐나다 엘버타대학 의과대학 내과전문의 제니퍼 링로스 박사는 고혈압 남녀 환자 85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상완형(upper-arm) 또는 손목형(wrist) 전자혈압계와 병원의 수은혈압계로 측정했다.
그 결과 전자혈압계는 수은혈압계와 수축기 및 확장기 혈압 모두에서 적게는 5mmHg, 많게는 15mmHg의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혈압의 경우 환자의 54%가 수은혈압계와 5mmHg, 20%는 10mmHg, 7%는 mmHg의 차이를 보였다. 특히 남성의 경우 차이가 크게 나타났는데, 링로스 박사는 팔의 사이즈와 성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최저 혈압은 가정용 혈압계 사용자의 31%가 수은혈압계에 비해 5mmHg, 12%가 10mmHg, 1%가 15mmHg의 차이를 나타냈다. 이 같은 차이는 팔 둘레, 하드 컵(hard cuff) 디자인 등의 영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링고스 박사는 “가정용혈압계 제조사들이 혈압 측정 알고리즘을 특허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이 같은 격차가 나는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미국 고혈압저널(American Journal of Hypertension) 온라인 판에 실렸다.
학회 “국제 인증 제품 문제없어” 홍보 강화
국내 학계는 국제 인증을 받은 전자혈압계의 경우 정확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임상고혈압학회에 따르면 ‘dabl Educational Trust’라는 비영리기구는 혈압기의 정확도를 측정해 권장 품목을 안내하고 있다.
dabl에 등재된 것 중 국내에서 시판 중인 전자혈압계는 오므론, 마이크로라이프, AND 등 3개 회사 제품이다.
한국임상고혈압학회 김일중 회장은 “국제 인증을 받은 전자진동식혈압계는 수은혈압계보다 오히려 정확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인증 제품을 사용하면 정확도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수은혈압계의 최대 오차 평균치는 12mmHg인데 비해 진동식 전자혈압계는 9mmHg로 오히려 정확도에서 앞선다”고 설명했다.
한국임상고혈압학회는 향후 국제 인증을 받아 정확성이 입증된 전자혈압계를 의사와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사용을 유도할 계획이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정확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산 전자 혈압계를 대상으로 인증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대한고혈압학회 김철호 이사장은 “국내에서 개발된 전자 혈압계가 정확한 지 여부를 학회 차원에서 검증하고, 혈압계의 올바른 측정법에 대한 교육을 통해 정확도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임상고혈압학회 김삼수 명예회장도 “현재 수은혈압계보다 나은 성능의 전자혈압계를 정부가 나서 공인해야 한다”며 “이와 더불어 안전한 수거·처리 방안을 마련하고 의료진을 대상으로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