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뺑뺑이 사망 논란→고군분투 의료진 '낙담'
부산→울산 대동맥박리 유족, 권익委 진정…醫 "이송‧수술 지연 아니다"
2024.04.12 13:03 댓글쓰기



사진제공 연합뉴스

부산에서 급성 심장질환이 발생한 50대 환자가 4시간 뒤 울산으로 옮겨져 사망하자 유가족들이 전공의 집단사직 영향이 있는지 밝혀달라며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의료계는 "소위 '응급실 뺑뺑이'로 진단이 늦어지거나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해 사망한 사례는 아니"라며 "이 시간에도 애쓰고 있는 119구급대원들과 최선을 다한 의료진의 사기를 꺾게 만드는 언론 보도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강조했다.


11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6시 13분쯤 부산 동구에서 50대 남성 A씨가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A씨를 태운 119구급대는 응급실이 있는 부산 주요 대형병원 10여곳에 이송을 요청했지만 전문의 부족 등의 이유로 모두 거절됐다.


A씨는 119 신고 45분 뒤인 오전 7시쯤 부산 수영구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수술이 필요한 '급성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았으나, 당시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다른 수술을 진행하고 있어 전원이 불가피했다.


결국 A씨는 최초 신고 후 4시간여 뒤 울산의 한 병원에 도착해 총 10시간에 이르는 수술을 받았으나 지난 1일 끝내 심장 기능이 돌아오지 않아 사망했다.


A씨 유가족은 병원들이 이송을 거부한 배경에 전공의 사직의 영향도 있다고 보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정황을 밝혀달라는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부산시 관계자는 "관련 사항을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보고했다"며 "이 사인이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중대 피해 사례인지는 중수본이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응급의학회는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유가족의 안타까운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제때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전공의 사직 사태와 관련해 지연이 발생한 것도 아니며, 소위 '응급실 뺑뺑이'는 더더욱 아니"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119구급대의 출동, 이송시간까지 고려하면 119신고 후 병원 도착까지 46분이 걸린 것을 두고 환자 안전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심각한 지연이 있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여러 병원에 환자 수용 여부 확인을 위해 연락을 한 것도 잘못이 아니고, 연락받은 병원에서 진료 능력과 당시 사정을 고려해 수용 여부를 판단해 확인해주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동맥박리증 진단을 위해 최소 1~2시간이 걸리고, 만약 응급실에 환자가 많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또 대동맥박리 수술을 응급으로 진행할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다. 흉부외과는 전공의 숫자도 많지 않아 전공의에 의존해 수술하지 않은 지 이미 꽤 됐다. 즉, 전공의 사직 사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흉부외과 전문의도 자신의 SNS에 "대동맥박리를 응급으로 수술하려면 흉부외과 전문의가 5명 이상 있는 병원이어야 한다"며 "수도권 이외의 지역은 심장수술과 대동맥박리 수술 건수가 너무 적어 흉부외과 전문의를 많이 고용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국민 불안, 응급의료체계 대한 불신 조장하는 의혹 제기 자제해야"


이처럼 의료공백 장기화 속에서 병원에 남은 의료진의 고군분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의사 부족과 결부되며 남은 이들의 한숨이 짙어지고 있다.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 B 교수는 "사안별로 불가피한 사정들이 있는데, 단정적으로 병원 이송이 안돼 사망한 것처럼 보도가 돼 상당히 아쉽다"고 토로했다.


일례로 소방당국은 지난달 22일 충주 수안보에서 70대 C씨가 전신주에 깔려 발목 골절상을 입고 수술을 받아야 했으나 인근 병원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뒤 시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C씨는 이곳에서 복강 내 출혈이 발견됐지만 외과 의료진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했고, 이후 지역 대학병원 등으로부터 전원 요청이 불발되며 이튿날 오전 수원 소재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을 받게 됐다.


이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며 의료계를 향한 여론의 비판이 격화됐으나,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이송 단계부터 의료진에 정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19구급대가 의료진에게 환자의 부상 부위를 발목으로만 전달하면서 이송 요청을 받은 병원들이 일반 정형외과로 전원을 안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사건 발생 약 열흘 뒤인 지난 4일 브리핑에서 "구급대가 복강내출혈까지는 의심하지 못했고 발목 골절 치료를 위한 병원을 선정 중이었다. 수용 의뢰된 병원에 복강내출혈 관련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충북에서 발생한 2세 여아 D양의 심정지 사고를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당시 D양은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뒤 충남, 충북, 대전, 경기지역 병원 10곳에 이송을 요청했으나 9곳에서 거부된 끝에 3시간만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응급의학회 관계자는 "만약 환아를 무리하게 상급종합병원 전원을 위해 이송했더라도 이송 도중 심정지가 발생해 수용 병원에 심정지 상태로 도착했을 것"이라며 "전원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장애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하게 진행돼야 하는 것이지, 무조건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하는 전원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B교수는 "최근에 항공기 승무원이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기내 승객을 구한 사건이 있었는데, 기사에는 '의사를 찾았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해서 승무원이 응급조치를 했다'는 식으로 보도되더라"며 "댓글에도 승무원이 잘했다는 얘기보다 의사들이 돈만 안다는 식의 내용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에서 자극적인 말보다는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바라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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