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 친구들과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는 이 시기조차 마음 놓고 즐길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다. 안기종 대표는 그런 환자와 가족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10여 년 전 만들어진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다. 그는 여느 해 못지않게 다양한 의료계 이슈들이 터져 나왔던 2019년에도 현장 곳곳에서 환자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힘썼다. 이번 인터뷰가 올해 예정된 마지막 일정이라는 그의 말에서 노곤함과 함께 아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안 대표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자들 입장에서 정부와 의료계에게 고언(苦言)을 쏟아냈다. [편집자주]
Q. 3년차를 앞두고 있는 문재인케어에 대해 평가하면
문재인케어를 바라보는 관점이 직역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환자단체 입장에서는 문재인케어 설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확인한 데이터에 따르면 건보재정 악화도 일각에서 우려하는 정도는 아니다. 물론 지금처럼 보장성 강화가 가능한 것은 누적 적립금도 많았고 건강보험료도 일정 수준 인상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케어가 이 수준보다 보장성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분명 재정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특히 약제비와 지불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3년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와 MRI, 초음파 등의 의료적 비급여를 급여화했는데 이는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모든 국민들이 반기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급여화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재정이 많이 투입돼야 하는 로봇수술, 고주파온열치료 등을 급여화 할 것인가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잘 넘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Q. ‘임세원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장에서 환자나 가족들에 의한 의료진 폭행이 이어지고 있다
왜 응급실이나 진료실에서 왜 폭언‧폭행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원인부터 분석해야 한다. 처벌만 강화하겠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의료진 폭행사건은 주취자들이나 폭력성이 강한 사람들에 의한 것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의사 설명이나 치료에 대한 불만이 쌓여 순간적으로 폭발해 폭언‧폭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복지부가 의사들을 대상으로 폭행을 당한적이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었는데 이런 조사를 폭행을 한 환자들을 대상으로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런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동일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Q. 중대 환자안전사고를 의무보고토록 하는 환자안전법 개정안(재윤이법)이 본회의를 통과 못하고 있는데
의료계가 아닌 국회의 문제다. 상임위에서 의료계 의견을 반영해 중대 환자안전사고의 범위를 좁혀 통과를 한 상황이라 사회적 합의는 이뤄진 법안이다. 그런데 지금 선거법 등의 문제로 인해 본회의에서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이다. 정쟁을 하더라도 민생과 안전에 관한 법안은 통과시켜줘야 하는데 국회가 국민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국회의원들이 내년 총선에서 전부 낙마했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여야 모두 발목을 잡고있는 건 상대편이라고 하지만 결국 모두의 잘못이다.
Q. 경기도가 산하 의료원의 수술실 CCTV 설치에 이어 신생아실까지 확대하고 있는데
물론 CCTV가 필요없는 의료환경이 되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그리고 수술실 CCTV 설치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사실 의사가 아니라 환자다. 의료계에서도 언급했듯이 유출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조사를 하면 90%정도가 CCTV 설치에 찬성한다. 의료계가 CCTV 설치에 부담을 느낀다면 나중으로 미룬다고 하더라도 수술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자격자 대리수술, 유령수술을 한 의사들의 명단 공개 및 의사면허 취소 등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의협은 수술실 출입시 명부 작성 및 지문인식 의무화 정도를 얘기하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Q.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 위주로 진료하게 하는 등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대한 생각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벌써 세 번째다. 그런데 개편할 때마다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악화되고 있다. 경증환자가 왜 시간과 돈이 더 드는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려 하겠는가. 의료전달체계에 있어 현재 환자 선택은 오히려 합리적이다. 실손보험이 있어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으며 한 번에 검사부터 치료까지 다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 것이다. 환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으로 동네의원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과 동네병의원들에 대한 정보도 꾸준히 제공돼야 하고 동네의원의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 동네의원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환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환자 한 명당 진료시간은 5분도 안 되고 진료도 진맥이나 촉진 없이 전부 말로만 이뤄지고 있다. 환자들과의 소통 확대를 포함 동네의원이 잘 할 수 있는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Q. 내년이면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출범한지 10년이 된다
과거에 비해 환자와 관련된 정책결정에 있어 환자에 목소리가 조금씩 반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환자의 참여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실질적 참여가 되기 위해서는 환자단체의 역량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각 지자체 그리고 의료계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자체적으로는 앞으로 연구소 등을 설립해 근거 자료들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정책 제안이나 법률 개정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한다. 또한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이슈 하나, 하나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통합지원센터, 의료사고피해자지원센터 등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 아닌 환자단체가 운영하는 유형의 조직들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