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정형외과 전공의 A씨는 최근 사흘간 한 60대 환자에 대해 동일한 브리핑을 아침마다 반복했다. “연세가 많은 아버님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며 환자 보호자인 자녀들이 차례로 찾아온 것이다. 세 번째 보호자가 찾아와 브리핑을 요구하자 A씨는 모든 가족관계자를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시간 조율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기자 보호자들은 “돈 받은 만큼 알아서 시간을 맞춰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A씨는 휴일이었던 주말 오후 5시에 출근해 브리핑을 진행했다.
#대학병원에 재직 중인 전문의 B씨는 최근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무리한 환자에게 ‘도둑놈’이란 소리를 들었다. 환자측이 보다 저렴하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냐고 항의하면서 빚어졌다. 사전에 수술비용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했고 무엇보다 까다로운 수술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경우였기 때문에 B씨는 당혹스러웠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3년차 전공의 C씨는 처음으로 담당 환자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것을 참았다. 상태가 위독해진 환자에게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던 와중에 옆 병상 환자가 “죽는 사람보다 살아있는 사람을 챙겨야 하지 않겠냐”며 갑자기 수액 교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물론 다른 환자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불만 민원이 쌓이면 고객 담당자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되는 원내 정책을 떠올리며 C씨는 이내 마음을 다스렸다.
이들 사례와 같이 의료진들에 무리한 요구나 공격적인 언행을 하는 일부 환자들로 인해 의료진들이 고충을 겪는 일이 많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한된 인력으로 진료가 이뤄지다보니 환자의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인 D씨는 “레지던트의 경우 보통 100~200명의 환자를 맡게 되고, 진료과목 교수의 경우 그 이상을 맡게 되는데, 위중하지 않은 환자들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건강‧생명과 관련된 만큼 환자들의 절박함도 물론 이해는 되지만, 일부 환자들은 진료 내용과 동떨어진 감정적 분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민감해진 의료진과 환자 간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실제로 4월초 서울에 위치한 K대학병원에서 진료 도중 교수와 환자 간 말다툼이 발생해 논란이 됐다.
이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E교수는 동네 병원에서 받은 소견서를 가지고 내원한 F씨(42)에게 앞선 치료 이력과 증상 등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그런 내용을 글로 써왔어야지, 여기서 말로 다 하면 어떻게 하냐”라며 면박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병원 측은 “교수님 입장에선 대기환자가 많아 마음이 급한데, 환자가 말을 길게 하니까 그렇게 말한 것 같다”며 “환자가 먼저 격하게 반응해 교수님도 격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K병원 관계자는 “현재 해당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며 이후 병원 규정에 따라 징계여부 등이 결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서울 某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부 부적절한 요구나 행동을 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공론화 될 경우 병원 입장이 더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아 병원 입장을 적극 피력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향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어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 불만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최근 대형병원들은 내부적으로 직원들 서비스 교육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