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토제 '맥페란' 사건 판결을 두고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환자 병력을 모두 알고 치료하기 어려운 상황과 더불어 구토에 사용할 수 있는 약(藥)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점 등을 들어 부당성을 주장했다.
11일 전문학회, 의사단체 등에서 잇달아 이번 맥페란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 사건을 간단히 살펴보면, 지난 2021년 초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액을 투여한 60대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됐다.
맥페란 투여로 전신쇠약, 발음 장애, 파킨슨병 악화 등 부작용이 생겼다는 게 원고측 주장이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병력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주사액을 투여했다"며 환자 손을 들어줬다.
창원지법에서 진행된 2심 재판도 원심 유지 판결이 나와 해당 의사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이번 사법부 판결에 대해 의료계는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와 유사하다고 보면서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가지 요인을 이번 판결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개인 의료정보 접근 한계 등으로 환자의 병력을 모두 파악하기 어려운 진료 현장에서 의사에게만 지나치게 무거운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대한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는 "이번 재판부 판결은 열악한 여건에서 묵묵히 진료실을 지키며 환자와 국민 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고 성토했다.
이어 "의료행위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나쁜 결과는 의료행위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어느 의사가 위험 부담을 무릅쓴 채 환자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지키려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건처럼 필수의료 더 기피하는 결과 초래"
학회는 "이번 판결이 의사들로 하여금 고령의 퇴행성 질환 등 고위험 환자에 대한 진료 회피를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임을 재판부가 고려한 것인지 묻고 싶다"며 "2017년 신생아 집단 사망으로 의료진이 구속됐던 이대목동병원 사건처럼, 가뜩이나 의료공백에 놓이고 있는 필수의료를 더 기피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도 "정말 말이 안 되는 판결이 나왔다"며 "파킨슨병은 서서히 악화되기보단 어느 순간 갑자기 나빠지는 병으로, 악화 요인이 무수히 많다"고 꼬집었다.
이어 "즉, 환자의 병을 악화시키는 원인을 맥페란이 아닌 다른 요인에서 찾을 수도 있다"며 "감기약, 소화제, 변비약 등 맥페란처럼 파킨슨 증상을 일시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는 약들이 많은데, 다 처방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했다.
"100% 안전한 약(藥) 없고 심평원 고시 안따르면 환수 등 제약"
또한 모든 의약품은 효과와 함께 부작용이 있으며, 선택지가 적은 경우 부작용이 있더라도 사용할 수 있다.
설사 다른 약이 있더라도 심평원의 고시를 따르지 않은 처방을 하게 되면 과잉진료로 보고 환수조치 등을 당하게 되는 것이 의료 현실이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이뤄진 의료행위마저 처벌하니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회장는 "위험을 무릅쓰지 말고 구토환자에 어떤 약도 쓰지 말아달라"며 "교도소에 갈 만큼 위험을 무릅쓸 만큼 중요한 환자는 없다. 앞으로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에 대해 매우 드물게 부작용 있는 맥페란, 온단세트론등 모든 항구토제를 절대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의사 출신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도 "부작용보다 작용 이익이 더 클 것이라는 전문가적인 판단 없이 문헌상 100% 안전한 약만 쓰겠다면 세상에 쓸 수 있는 약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우리나라에서 구토에 쓸 수 있게 허가된 약은 맥페란 단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아와 고령에서 위험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이득이 더 크리라는 전문가의 의학적 판단 아래 사용한 것"이라며 "온단세트론도 구토에 효과적이지만 한국에서는 항암치료 중이 아닌 이상 구토환자에게 이 약을 쓰면 과잉진료한 것으로 보고 환수된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약을 썼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상해죄로 형사 처벌을 받고, 반대로 약을 쓰지 않으면 소극적인 치료로 치료 시기를 놓쳤다며 책임을 묻는다"며 "의료진에게 이거 해주겠다, 저거 해주겠다고 공수표를 남발하지 마라. 전문성을 신뢰해주고, 좋은 방법을 찾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