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응급의료 현장을 지탱하는 의사들 사명감과 책임감만으로는 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의료진의 헌신이 오히려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명감을 요구하기보다 내적동기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강문 건국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주임교수는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계간 ‘의료정책포럼’에 게재한 연구보고에서 중증응급의료 전문의들의 진료 지속 동기를 분석하고 필수의료 인력정책의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번 연구는 서울 소재 3개 대학병원에서 중증응급의료를 담당하는 전문의 16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다. 의료진이 왜 현장을 떠나는지뿐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도 왜 진료를 계속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김 교수는 2024년 의정사태 당시 등장한 ‘낙수의사’ 담론에 주목했다.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인기 진료과나 수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인력이 필수·지역의료로 유입될 것이라는 접근이 젊은 의사들의 직업적 가치와 진로 선택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단순히 젊은 의사들 이기주의나 도덕성 문제로 볼게 아니라 전문직으로서 가치와 성취 가능성이 좌절되면서 내적동기가 약화되는 과정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의정사태 이후 현장을 떠난 의사들을 직접 조사한 것은 아니다. 현장에 남아 있는 전문의들 경험을 통해 진료 지속 동력과 이를 위협하는 구조적 요인을 분석했다.
치료 성취감·책임감·동료 유대가 잔류 동력
심층 면담에서 확인된 진료 지속 동기는 단순히 사명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이뤄졌다.
위급한 환자 상태를 안정시키고 자신의 판단과 처치로 생명을 살렸을 때 느끼는 임상적 성취감이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일부 참여자는 이를 ‘바이탈 뽕’이라고 표현했다.
위급한 순간 환자 곁을 지키겠다는 책임 의식과 동료들과의 유대, 소속 진료과 공동체에 대한 애착도 진료를 이어가는 이유였다.
이들은 열악한 진료환경과 지속 가능성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환자 치료와 전문직 정체성에서 의미를 찾고 있었다.
이는 내적동기가 고정된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진료 과정에서 성취와 성장을 경험하고 환자·동료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확인하며 유지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필수의료 정책 역시 의사들이 해당 분야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이 지속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헌신에 기댄 시스템, 잔류 동기마저 ‘소진’ 우려
연구는 전문의들의 잔류가 무조건적인 헌신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짚었다. 참여자들은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후배와 동료들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현재 근무환경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떠나면서 업무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거나, 전문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개인 희생이 당연시된다면 현장을 계속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책임감이 강한 의사일수록 부족한 인력과 시스템 공백을 스스로 메우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헌신은 구조적 문제를 가리고 개선을 지연시킬 수 있다. 내적동기 역시 무한정 소모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의대 정원 확대나 특정 진료과·지역으로의 인력 유입만으로는 필수의료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의들이 역량을 발휘하고 임상적 성취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진료 여건을 개선하면서 동료들과 지속 가능한 협력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필수의료 정책은 현장 의료진에게 사명감을 강요하고 새로운 동기를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들이 이미 품고 있는 소중한 동기를 훼손하지 않고 지켜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의사들이 어떤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동기를 잃어가는지 파악하고, 이를 방어해 줄 수 있는 현실적인 안전망이 하루빨리 구축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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