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의사로 살 수 없었다' 목숨 끊은 성형외과 의사
블로그에 유서 남겨, '저수가 시스템은 의사들을 돈 버는 공장으로 내몰아'
2018.03.20 12:34 댓글쓰기

국내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에서 교수로 근무했었던 의사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A씨는 지난 17일 본인의 블로그에 마지막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블로그에 올려진 유서 전문을 보면 “그저 보통의 착한 의사로 살고 싶었지만 세상은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2012년 서울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에 과장으로 스카우트 돼 근무하게 됐지만 왼쪽 팔이 마비가 와 응급으로 목디스크 수술을 했다. 당시 그는 성형외과 의사가 한쪽 팔이 마비돼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 후 6주 가량 시간이 흐르면서 저림증이 심해졌고 담당 교수에게 수도 없이  찾아갔지만 A씨는 숨쉬기조차 힘들어 잠을 잘 수 없는데도 계속 우울증 약만 처방해줬다는 것이다.
 

지난 2012년 말 다른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증상이 좋아져 2014년에는 某대학병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의사로서의 삶을 진정 환자를 위해 열심히 살고자 했다"며 "진료를 교묘하게 거부하는 일도 없었고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한 욕창 환자들도 성심성의껏 진료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너무 환자를 열심히 봤던 것인지 진료 수익이 점점 증가되자 주임교수로부터 오히려 경계심을 받아야 했다고 했다.
 

A씨는 “회진도 혼자 돌 수밖에 없었고 환자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며 “전공의들이 모두 그 교수에게만 집중해 본인의 환자는 제 때 퇴원을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독박’ 시스템으로 전공의들은 밤 10시도 환자들을 드레싱하는 일이 생겼다”며 “항상 밤에는 각종 서류작업과  응급실 콜에 시달렸다. 이 당직 시스템을 고쳐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아무도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 교수는 논문을 쓰라고 모든 전공의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었고, 양방수술을 하는 등 빨리 빨리 수술을 원칙으로 하면서 작은 공장식으로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단지 합리적이기를 요구했지만 그 합리성은 그 성(城)에서 왕국을 깨뜨리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별종의사’ 시스템의 부적응자일 뿐이었다”며 “그 교수는 급기야 잔혹하게도 전혀 없던 내가 성추행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가공해서 만들어냈다”고 울분을 토했다.
 
학교와 병원 명예를 위해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진실은 밝혀지리라 생각했다.
 

A씨는 "한 개인에 대한 폭로만은 아니다. 일부 수련병원의 일상화된 악(惡)"이라며 "사실 이 같은 일은 전국에서 벌어지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연구 프로젝트가 종료되면서 A씨는 해당 대학병원에 사표를 내고 개원가로 나왔다. 상황은 더 악화일로였다.


강직성척추염진단을 받은 그는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에도 지원했지만 이력서의 논문들, 예컨대 특허 등 최근 업적이나 경력은 고려되지 않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돼 보면 저수가의 뒤틀어진 의료시스템에서 '착한 의사'로 살아가려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밖에 없다”며 “바지 기장을 줄이는 것보다 열상 봉합수술 수가가 더 싼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생을 마감하는 죄악 씻기 위해 장기기증 서약 이행으로 용서 구해"


특히 "무분별한 결과가 입증 안 된 각종 미용성형, 소비자를 속이는 시술과 수술들이 얼마나 많은가"라며 "결국 저수가 시스템과 자본은 의사들을 어쩔 수 없는 돈 버는 공장으로 가도록 이래저래 내몰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2017년 가을부터 개원 이래 조직적으로 시행된 유령수술의 온상에서 더는 있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이 유령수술을 직원들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점차 그 나쁜 짓에 둔감해졌다”며 “수익을 위해 공장 시스템은 더 가속화 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윤리적인 유령, 대리수술은 할 수 없었다”며 “먹고 살려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그간 아파서 쌓인 빚들을 갚으려면, 그래도 유령수술을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답답함을 피력했다.


아울러 “저수가로 인한 의사들의 미용성형, 과다 경쟁, 덤핑, 공장식 병원 운영, 대리 유령수술, 과장 허위 성형 광고 등 결국은 윤리에 둔감해지고 성형 시장에 종사하는 이들은 갈수록 악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A씨는 “불의와 맞서 싸우지 못한 비겁한 선택,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은 최악의 죄이다. 죄를 씻을 방법이 전혀 없다. 장기들을 절박한 환자 분에게 드리는 과거 서약을 이행하는 것으로라도 조그마한 용서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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