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안락사 '반대' 존엄사 '찬성'
2001.11.11 12:06 댓글쓰기
의료계가 안락사는 '반대'하지만 존엄사에는 '찬성'한다는 의견을 구체적으로 처음 개진했다.

이는 지난 4월 의협에서 제출한 '의사윤리지침'이 네덜란드 안락사 합법화와 맞물려 '의협이 안락사에 찬성하는 게 아니냐'는 언론·종교계의 오해를 샀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손명세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의협이 제출한 윤리지침에 안락사 반대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었는데도 사회적으로 오독돼 억울한 비판을 받았다"며 "이는 안락사·존엄사의 용어가 분명히 정의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정확한 용어정의를 위해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말기환자의 생명연장 중단 등 의사들이 찬성하는 행위만을 존엄사라 칭하고, 치사량의 약물 처방 등 반대하는 행위를 안락사로 명명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이윤성 서울의대 법의학과 교수는 '보라매병원 사건'을 예로 들며 △과다한 연명치료 중지 △무의미한 치료 중지 등 존엄사가 법제화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당시 소생할 가망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킨 조치에 대해 법원은 환자 생명보호 의무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내렸다"며 "하지만 사망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동안 진행되는 과정"이라며 법원의 판단근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학발전에 따라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생명연장 행위가 늘고 있다"며 "삶의 질과,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존엄사 법제화를 위해 각계의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고혈압성 뇌출혈로 뇌조직이 완전 손상된 환자의 가족이 집에서 임종을 모시고 싶다고 요구했지만, 아직 뇌사 또는 심장이 멎는 상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퇴원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실례를 제시했다.

제퍼슨 의대 교수 등을 지낸 김일훈 美내과전문의는 "네덜란드와 美 오레곤州를 제외한 세계의료계에서 안락사 반대와 존엄사 찬성은 대세"라며 "美 기독교계도 연명의료는 도움보다 해를 줄 수 있는 과다치료로 인정하는 등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지정토의에서 한동관 의료법학회장은 "불필요한 의료행위로 살려야 될 환자를 못살리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며 사회적 비용·의료 공평성 등을 고려한 합리적 대안이 제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다수 참석자들은 존엄사 법제화에 긍정반응을 보이면서도 사회 각계, 특히 법조계와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 '보라매병원 사건'이 일으킨 파장을 짐작케 했다.

심포지엄은 의료계의 기준을 바탕으로 환자, 종교계, 법조계 등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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