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긴 수험 생활을 마치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났던 고3 학생들이 갑작스런 참변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에서 잠을 자다 일산화탄소 중독에 빠진 학생들은 총 10명으로, 숨진 3명을 제외한 나머지 7 명의 학생들은 각각 강릉아산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이송돼 고압산소치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 고압산소 치료를 통해 학생들 상태가 대부분 호전, 일부는 퇴원을 해서 부모는 물론 국민들이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강릉아산병원 강희동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5명 중 3명의 상태가 좋아져 퇴원했고, 나머지 학생들도 의식이 많이 돌아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료학과 차용성 교수도 브리핑을 통해 "한 학생은 의식이 완전히 회복돼 자가호흡이 가능하며 나머지 학생도 의식이 빠르게 호전돼 인공호흡기 제거를 고려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병원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고압산소치료기에 관심이 쏟아지는 중이다.
‘다행스럽다’는 말을 붙이기 어려운 비극적 사고이지만 강원도 내 강릉아산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2곳이나 고압산소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던 덕분에 학생들이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들은 고압산소치료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수도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응급 치료가 필요한 여러 명의 환자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다인용 고압산소치료시설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 병원은 서울에는 단 한 곳도 없으며 전국을 통틀어도 9곳에 불과하다.
강릉아산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하루 최대 10만원의 수가에도 불구하고 24시간 운영되는 고압치료센터실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골든타임을 지키려는 병원의 노력이 이번 사건으로 진가를 발휘한 셈이다.
이처럼 준비된 의료시스템은 정말 필요한 상황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만 평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높은 유지 비용으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몇몇 의료기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명 ‘달리는 중환자실’로 불리는 ‘중환자실 구급차(Hallym Mobile ICU)’도 마찬가지다. 중환자실 구급차는 국내에서 찾기 힘든 장비로, 말 그대로 환자를 이송하는 중에도 중환자실과 동일한 치료를 할 수 있는 장비 등을 구비한 차량이다.
일반 구급차보다 규모가 1.5배 커 의료진이 서 있는 상태로 환자를 볼 수 있으며, 여러 장비를 동시에 가동할 수 있도록 내부 전력을 늘리고 장거리 환자 이송에 대비해 산소통도 4배 더 실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현재 서울시가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1년 예산이 10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병원은 도입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한 대를 도입해 운영 중인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익수 사고로 폐에 물이 가득 차 온몸의 피가 하던 응급환자를 살려낸 것이 미담으로 전해지는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국립암센터와 삼성서울병원만 운영하고 있는 양성자센터도 비슷한 맥락이다.
막대한 양의 방사선을 쏟아 부어 암세포를 죽이는 양성자치료는 이미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서도 재발한 암이나 소아암, 수술이 어려운 암 등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 암질환을 치료할 때 사용된다.
3000억원을 들여 양성자치료센터를 세운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2년 간 1000명 정도의 환자를 치료했다. 국립암센터는 지난 11년 간 2500여 명의 환자가 이 곳을 이용했다.
암 치료 특성상 투자 대비 적은 환자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려운 환자들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적자 운영을 감내하고 있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몇 없는 환자를 위해 손실을 각오하고 꿋꿋이 진료를 펼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공백을 만들지 않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병원과 의료진의 노력들이 더 많이 알려져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방향의 의료시스템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