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근빈 기자] 환자안전법이 강조되고 있지만 의료인을 보호하는 테두리는 견고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세상을 떠난 뒤 ‘임세원법’이 통과돼 의료인 폭행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음에도 의료인을 겨냥한 범죄는 현재 진행형이다.
#. 서울시 노원구 하계동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40대 초반 A정형외과 교수가 50대 후반 B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손가락을 절단당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노원경찰서는 지난 10월24일 살인미수 혐의로 B씨를 체포했다. B씨는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신문지에 칼을 숨기고 A교수를 찔렀다. 이 과정에서 B씨 범행을 말리려던 40대 남성 석고기사 C씨도 칼에 찔려 부상을 당했다.
25일 데일리메디가 파악한 결과, 사건 당일 A교수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현재는 많이 회복한 상태이지만 심적인 부담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A교수 동료의사는 “수술이 잘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세 현미경수술을 하는 수부외과의사에게 수부 손상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며 아쉬움을 남겼다.
언론에 대거 보도가 나오자 A교수는 병원 측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다”며 입원장소 등을 비공개로 해달라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을 말리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던 C석고기사 역시 안정적 상황 속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벨 설치·경비인력 보강 등 검토
해당 병원 측은 사건 직후 주요보직자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결정짓지 못한 상황이다.
일례로 각 외래마다 비상벨을 설치하고 경비원을 추가 배치하는 등 후속대책이 거론된 상황이지만 어떤 방법을 적용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병원 측은 “다음 주 본격적인 대책회의를 이어갈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여러 대응책이 발동된다고 해도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 수 있는 예방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보다 구체화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전언이다.
물론 병원내 임직원들은 큰 충격에 쌓였다. 다행히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살인미수에 해당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병원 내부 분위기는 무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병원 측은 내부촬영 중단을 언론에 요청했고 환자들의 동선에 방해되는 일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응 중이다.
병원 관계자는 “당혹스럽고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의료기관으로써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은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환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일련의 상황을 빠르게 극복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의료계 "의사 대상 유사사례 피의자 처벌 강화" 촉구
동료의사 피습사건이 발생하자 의료계는 적극적으로 관련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먼저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작년에도 의료기관 내 의료인 폭행이 여러 차례 발생해 강력한 처벌 마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으나 의료인 폭행 사건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인 폭행의 심각성에 대한 캠페인 등 국가의 적극적인 홍보가 아직도 미흡하고,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추가적인 법적․제도적 보완책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사회안전망 보호차원으로 의료기관 내 폭행 등 강력범죄 근절법안 마련(반의사 불벌 규정 폐지, 의료인 보호권 신설 등) ▲의료기관안전기금 신설 ▲보안인력 및 보안장비 배치에 대한 정부 비용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회장 이태연)와 전라남도의사회(회장 이필수)도 각각 성명서를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형외과의사회는 “故 임세원 교수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의사 피습사건이 발생했다. 병원에서 보건의료인에 대한 폭력사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폭력사태에 대한 대책을 수없이 호소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의료인 폭행방지법 처벌조항은 일선에서 벌금형이나 가벼운 처벌에 그치고 있고 사문화돼있고 반면 의사에 대한 불신과 법적 규제는 점점 의사의 목을 조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라남도의사회(회장 이필수)는 “의료현장에서의 폭력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의문이다. 진료실, 응급실 등을 포함한 의료현장에서 폭언과 모욕, 폭력행위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료의사들은 제도적으로 의료인을 향한 처벌이 여전히 가볍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정형외과의사회 및 전라남도의사회 측은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심신미약이나 주취 등 이라해도 관용없이 일벌백계 차원에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 벌금형이 아닌 구속수사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준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