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백성주 기자] 뇌전증은 뇌졸중이나 치매환자 다음으로 많은 3대 신경계 질환이지만 정부 지원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의료 현장의 불만이 나왔다.
치매 및 경도인지장애에 급여가 되고 있는 신경심리검사가 중증 뇌전증 환자들에게는 비급여다. 의료사회사업 역시 정신질환 및 재활의학에서만 급여 적용돼, 뇌전증에는 활용될 수 없다. 게다가 치료를 위한 장비 중 다수는 국내에 없다.
대한뇌전증학회는 14일 서울 드래곤시티에서 ‘제24차 대한뇌전증학회 국제학술대회(Korean Epilepsy Congress)’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같은 현실을 토로했다.[사진]
이 자리에서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 편견대책위원장은 “지난 2017년부터 뇌전증의 의료사회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요청했지만 보건당국은 묵묵부답이다. 전국에 치매안심센터는 250개에 달하지만 뇌전증지원센터는 단 한곳도 없다”고 주장했다.
전체 뇌전증 환자의 약 30%를 차지하는 약물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에게는 뇌전증 수술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원인 뇌부위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하는데 정확한 검사 장비가 뇌자도(MEG)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에는 수십대가 갖춰져 뇌전증 환자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에는 한대도 없는 실정이다.
또 뇌를 열지 않고 작은 구멍만 뚫고 뇌전증 병소를 제거할 수 있는 내시경 레이저 수술장비 역시 국내에는 1대도 없다. 이 수술을 받기 위해선 외국에 나가야 한다.
이 외에도 두개골을 크게 열고 특수 전극을 삽입하는 기존 뇌전증 수술 대신 최근에는 두개골에 여러개의 작은 구멍을 뚫고 침전극을 삽입하는 삼차원뇌파수술(StereoEEG)이 미국, 유럽 등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ROSA 로봇 장비 역시 국내에는 없다. 최근 2명의 뇌전증 환자들은 뇌자도 검사를 받기 위해 일본 교토대학병원을 방문, 검사를 받았는데 한 환자당 비용이 500만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승봉 위원장은 “뇌졸중과 치매는 정부의 예산지원이나 국가책임제를 통해 정부의 재정적, 법적 지원을 받고 있는 반면 뇌전증에 대한 정부지원은 거의 전무하다”고 피력했다.
“뇌전증 환자들 지원법 제정 통한 사회적 지지 절실”
뇌전증은 ‘반복적인 발작’을 주 증상으로 하는 3대 신경계 질환으로 치매, 뇌졸중 다음으로 흔하다. 신생아부터 100세 노인까지 누구나 발병할 수 있다.
국내 뇌전증 환자는 약 30-40 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뇌전증 환자의 약 70%는 약물 치료로 발작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대한뇌전증학회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병명을 과거 ‘간질’에서 ‘뇌전증’으로 바꾸는 노력을 펼친 결과, 지난 2014년부터 정부 승인을 받아 뇌전증이 법령용어로 사용돼 왔다.
김흥동 대한뇌전증협회장은 “아직도 사회 각 분야에서 이전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질병 이름에서 연상되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뇌전증’에 대한 편견 해소,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줄이기 위해 학회는 전국적으로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시민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또 뇌전증 관련 정책 개발과 대국민 공익방송,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다.
김흥동 협회장은 “일반인보다 3배 높은 우울증과 불안증을 겪는 뇌전증 환자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의해 더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의학계, 정부, 언론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 현장에선 예방‧진료‧연구 등 뇌전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뇌전증 환자의 재활과 자립이 이뤄질 수 있는 지원프로그램 확보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김재문 대한뇌전증학회 이사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관련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