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한 분만수가 인상에 포괄수가제까지 '암담'
개원가·대학병원 '차등수가제 실효성 있나' 의구심 팽배
2013.08.01 12:57 댓글쓰기

산부인과

[기획 1-3]산부인과와 정부의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저출산에 따른 환자 급감은 산부인과의 위기를 가져왔고, 고강도 업무강도와 의료사고 위험은 전공의 기근으로 연결됐다. 경영 악화로 분만하는 산부인과의 폐업이 잇따르면서 의사들 자존감은 크게 떨어졌다.


이 같은 열악한 산부인과 환경은 분만수가 가산지급으로 이어졌지만 정작 산부인과 의사들은 실효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의료분쟁조정법과 포괄수가제 등 의료계 주요 사안이 모두 산부인과에 직격탄을 주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손을 대는 곳마다 산부인과가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부인과 위기는 의료계와 정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가 인상으로 일선 의료기관의 숨통을 터주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분만수가 가산지급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취약지역 산부인과를 살리고자 긴급 수혈에 나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올 초 병원별 연간 분만 건수에 따라 진료비를 최대 200% 올려주는 내용이 포함된 필수의료서비스 개정방안을 의결했다.


1년 동안 분만 건수가 50건 이하인 산부인과는 자연분만 진료비를 200% 올려주는 것이다. 이 밖에 연간 분만 건수 51~100건 100%, 101~200건 50% 인상을 확정했다.


이 같은 차등수가제는 분만을 포기하거나 산부인과의 폐업을 막기 위한 조치지만 정작 의사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 형편이다. 약간의 수가인상이 아주 기초적인 인공호흡 조치는 될 수 있지만 산부인과 회생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될 것이란 목소리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산부인과 수가가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산부인과의 몰락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책이었는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실제 산부인과계에서는 개설 기관 수보다 폐업이 많은 ‘개폐업 역전 현상’이 2006년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7년간 산부인과 연 평균 폐업기관 수는 120곳이며 폐업률은 7.1%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에서는 분만수가 인상과 더불어 마취초빙료 현실화, 질강처치료의 적절한 수가 인정 및 횟수 제한 철폐, 요양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 차등제와 같은 대책을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개원가뿐만 아니라 대학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분만수가 인상과 같은 정부 대책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혜택이 미미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책이라는 주장이다.


분만 건수와 병원이 동시에 급감하고 전공의 확보까지 갈수록 어려워져 위기를 반등시킬 적극적인 지원과 대책만이 환영받을 수 있는 분위기다.


한 대형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면 답답함을 느낀다”면서 “일본만 보더라도 산부인과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투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재정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수가를 조금 올렸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산부인과가 정책적 고려 대상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의료 환경 전반을 회생시킬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선행 이사장은 “분만 현장에는 일단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애초 산부인과를 유지할 수 없는 곳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라며 “산부인과 살리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산부인과의 역할이 중요하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분만수가 가산지급 시범운영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부지원 정책이다. 경영난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불 지핀 포괄수가제 “산부인과만 왜?” 정부 정책에 절규


7월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산부인과는 ‘복강경 수술 거부’ 카드를 전격 꺼내들었다. 지속적인 의견 개진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수술 대부분이 포함되는 포괄수가제 강행에 반발하는 의미에서다.


애초 산부인과의 포괄수가제 적용 대상 질병군은 제왕절개분만과 자궁 및 자궁부속기 수술이다. 이는 산부인과에서 실시하는 부인과 수술 대부분이 해당되는 것으로 난이도나 변이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분류체계라는 지적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사무총장은 “현행 포괄수가제는 4개 과만 시행하고, 그 중 유독 산부인과에 집중돼 있다”며 “대학병원을 포함한 종합병원급 이상까지 강행된다면 각 병원 경영 효율화 요구에 밀릴 산부인과는 그야말로 고사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분만장 축소·폐쇄 사태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포괄수가제는 산부인과 붕괴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우려다.


학회 김병기 비상대책위원장은 “포괄수가제는 병원, 의원과는 다르게 중증 환자들을 담당하고 학문 발전을 이루며 동시에 신의료기술을 연구‘개발해야 하는 대학병원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제도”라며 “유독 여성 건강과 관련된 신의료 발전만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산부인과의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고, 즉각적인 회생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산부인과 살리기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의 엇박자 행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인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설득력이 있는 자료와 근거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강경 기조를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학회 차원에서 제대로 된 근거 자료를 가지고 정부와 절충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계 인사 역시 “산부인과의 어려움은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면서 “정부와의 대화에서 제시할 자료와 국민을 설득할 만한 근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포괄수가제 사안으로 산부인과와 수술 거부 사태까지 맞닥뜨린 보건복지부는 종합병원급 이상 확대 적용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대화 의지를 보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믿을 수 있는 자료를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논의가 빨리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면서 “공무원은 가정법에 입각해 일하지 않는다. 충분히 협의해 원만한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 생각한다. 공통으로 지향하는 방향을 보고 객관적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산부인과의 수술 중단 카드는 포괄수가제를 수용하되, 시행 후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1~3년 간 제도 개선에 나선다는 조건부 수용안에 합의하며 철회됐다. 가임능력보존수술 수가 가산 요구도 받아들여졌다.


복지부 측은 “ 산부인과 의견을 반영해 수가 현실화와 신의료기술, 환자분류체계 등은 제도 시행 후 협의체를 구성, 지속적으로 보완하기로 했다”며 “제도 시행 후 6개월 이상의 청구 자료와 및 의료계 제출 자료를 가지고 평가해 보완 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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