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암(癌) 진료현장에 ‘중입자가속기’ 열풍이 거세다. 연세의료원이 지난 4월 국내 최초로 중입자가속기를 활용한 암 치료를 시작했고, 서울대병원은 동남권 중입자가속기치료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 외에도 서울아산병원도 중입자가속기 도입을 예고했고, 고려대의료원 역시 제4병원에 중입자 암치료를 구상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입자가속기 열풍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탁월한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는 만큼 암치료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수 천억원에 달하는 설치비용 등을 감안하면 의료비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한다.
암세포 파괴하는 날카로운 명사수
중입자가속기는 탄소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후 환자의 암 조직에 조사(照射)해 조직에 닿는 순간 방사선 에너지를 방출, 암세포 DNA 자체를 파괴하고 암조직도 사멸시킨다.
중입자선은 정상세포를 최대한 보호한 상태에서 암세포만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만큼 치료 효과가 크고 부작용이 적다.
기존 방사선 치료가 최소 6개월에서 최장 2년까지 30~40회 진행되는 반면 중입자치료는 한 달여간 12회 정도면 치료가 끝나 환자 부담도 덜하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 후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해 20분이면 충분하고, 무색·무취·무미로 통증 없이 누워있기만 하면 치료가 끝난다. 실제 중입자 조사 시간은 1분30초에 불과하다.
때문에 암환자가 일상생활을 그대로 영위하면서 암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폐암, 간암, 췌장암, 두경부암, 골육종, 전립선암 등 수술이 어려운 암에 두루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췄다.
특히 방사선량은 수소입자를 사용하는 양성자 치료에 비해 적지만 질량은 약 12배 정도 무거워 암세포 사멸률은 3배 이상 높다.
중입자 치료는 강한 암세포 파괴력도 있지만 에너지를 특정 한 지점에만 모아서 터뜨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이에 국제학술지인 네이쳐는 중입자치료기를 ‘암세포를 파괴하는 날카로운 명사수(Sharp Shooters)’라고 표현했다.
일본, 중입자치료 선도…선진국들 도입 경쟁
세계 최초로 의료용 중입자가속기 구축 프로젝트를 시작한 곳은 1984년 일본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다.
오랜 연구개발 끝에 지난 1994년 임상시험을 시작으로 27년 동안 총 7곳의 병원에서 세계 최다인 1만5024건의 치료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7개 국가 16곳에서 중입자치료기를 운영하고 있다. 그 중 일본이 7곳으로 가장 많고 독일 3곳, 중국 2곳 순이다.
여기에 중국과 프랑스, 대만이 각각 1곳씩의 중입자치료기 도입을 예정하고 있고, 양성자치료 위주의 미국에서도 중입자치료센터 설립 계획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자본력을 등에 업은 중동 일부 국가에서 중입자치료기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중입자치료를 선도하고 있는 곳은 연세의료원이다. 연세의료원은 총사업비 3000억원을 들여 우리나라 최초로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하고 지난 4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 역시 총사업비 2700억원을 들여 부산시 기장군에 암센터를 건립하고 암치료용 중입자치료기 도입을 준비 중이다.
오는 2027년 개원을 목표로 도시바-DK메디칼 컨소시엄과 중입자가속기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해 치료계획시스템(TPS) 및 방사선종양학정보시스템(OIS) 계약도 마쳤다.
제주대병원은 지난해 7월 CCG인베스트먼트 아시아, 도시바, 일본 QST병원, 중입자치료지원센터코리아와 ‘중입자선 암치료 설비 도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총 사업비 6000억원을 들여 10만여평 부지에 중입자암치료센터와 환자전용 숙박시설과 부대시설을 건립하고 오는 2027년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외에 서울아산병원도 중입자가속기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고대의료원도 경기도 과천과 남양주에 설립 예정인 제 4병원에 중입자가속기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치료비 5500만원, 급여화는 요원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우려도 공존한다. 가장 큰 난제는 단연 치료비다.
연세의료원의 경우 총 12회 치료비용으로 5500만원을 책정했다. 과거 암환자들이 중입자 원정치료에 1~2억원을 지출했던 것에 비하면 적지만 여전히 만만찮은 비용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양성자 치료비가 연 25회 기준으로 회당 약 200만원인 것에 비해서도 높다. 양성자 처럼 급여화 전망도 나오지만 암환자들에게는 일각이 여삼추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이유로 고액 치료 보장을 제한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중성자치료의 급여화는 요원하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40년 건강보험 누적 적자가 67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계했다. 기재부 역시 2025년에는 건보공단의 누적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폭발적 수요가 예상되는 중입자치료에 대한 급여화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고, 설령 급여화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는 발빠르게 중입자 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상품 개발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다.
금감원은 보험료 산출을 위한 통계조차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입자 치료를 보장하는 상품이 출시될 경우 시장에 혼란이 생길 수 있음을 우려했다.
결국 환자들은 꿈의 암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고스란히 5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