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윤한덕 떠났지만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2019.04.11 05:23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정승원기자. 기획 3]해가 바뀌기 전날인 2018년 12월 31일, 그리고 올해 설 연휴인 2월 4일. 의료계는 두 사람을 잃었다. 지난해 마지막 날에는 강북 삼성병원에서 진료를 보던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에게 피습당해 사망했고, 설에는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 중앙응급 의료센터장이 과로로 사망했다. 두 의사 사망은 의료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임세원 교수의 사망으로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TFT가 구성돼 의료인 폭력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고, 윤한덕 센터장 사망은 의료인들의 살인적인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두 의사의 사망 사건이 의료계가 처한 현실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의료계에 커다란 숙제를 남기고 떠난 이들은 생전에 성실한 의사이자 동료이자 누군가의 가족이었다. 데일리메디는 임세원 교수와 윤한덕 센터장을 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자신에겐 엄격했지만 환자에게는 따뜻했던 故 임세원 교수
故 임세원 교수는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였다. 그는 자신의 SNS에 객관적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었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 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 하시고 나 또한 그 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돼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  2018년 12월 故 임세원 교수가 자신의 SNS에 남긴 글 -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임세원 교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지만 환자에게는 따뜻한 의사였다. 
 

오빠가 책을 냈었는데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그 어떤 낙인도 없는 의사도 고통 받을 수 있는 사실을 알렸던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했던 환자들을 위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 과정을 보면서 오빠가 얼마만큼이나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사람들이 낙인 없이 치료 받길 원했는지 알 수 있다. 오빠처럼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자신의 진료권 보장이나 안위도 걱정하지만 환자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질환을 빨리 극복하길 원한다고 확신한다. 고인이 평생 환자를 위해 살았던 것만 생각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인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 故 임세원 교수의 동생 임세희 씨 -


임세원 교수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환자에게 따뜻한 임상가 였다. 세원아. 주변에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면 너 같고 군중 속에서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故 임세원 교수의 30년 지기 백종우 교수 -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는 위험하지 않다. 극히 일부분만 위험한데, 이런 분들도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유족들도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학회에 요구한 것이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임 교수가 평소에 저희와 항상 나누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가족들도 알고 계셔서 그런 당부를 한 것 같다.”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동우 정책연구소장 -


임 교수 사망 후 그에게 진료를 받은 환자들의 조문도 이어 졌다. 환자들은 임 교수가 아픈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선생님이라고 기억했다.  

“우울증 약을 끊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던 아들이 임세원 교수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임세원 교수는 아픈 환자들을 자상하게 치료해주던 선생님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 故 임세원 교수에게 진료를 받던 환자의 보호자 정모 씨 -

 
 “윤한덕이라는 분을 직장상사로 둬 행복했다”
윤한덕 센터장은 국내 응급의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이었다.
그가 맡은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국내 응급의료 인력과 시설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남겨진 사람들도 그를 헌신적인 의사로 기억했다.

 

“그가 보건복지부 내에서 응급의료 일만 전담하는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부 내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한덕은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묵묵히 이끌어왔다. 수많은 장애요소에도 평정심을 유지했고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 보고 걸어왔다.
그는 응급의료계에 말도 안 될 정도로 기여해 온 영웅이자 버팀목이다.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  우리가 도입하는 응급의료헬리콥터 내에는 윤한덕 선생의 비행복을 항시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타 기체와 혼동하시지 않도록 기체 표면에는 윤 선생의 존함과 함께 콜 사인인 '아틀라스'를 크게 박아 넣을 것이다.”

-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 -

 

그렇게 밖으로 사진 찍히는 것 싫어하시더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셨다. 왠지 ‘나 이거 싫은데’라고 툴툴거리시는 게 내 귀에 선명히 들리는 것 같다. 직원들이랑 소통도 하고 좋은일 슬픈 일 같이 나누자고 만드셨던 카톡방에 갑자기 센터장님 부고 알림이 올라왔고 직원들은 충격에 서로 위로하는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했다. 당신의 소중한 가족들이 가졌어야 할 귀한 시간을 저희가 뺏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고 죄송했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병원에서 실수하면 몇 명의 환자가 죽지만 우리가 실수하면 몇 백 명, 몇 천 명의 국민들이 죽을 수 있다’는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항상 국민들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 업무에 대한 생각이 너무 커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표하신 적도 있지만 그 미안함 모두 잊으세요.
그동안 윤한덕이라는 분을 직장상사로 둬 너무 행복했고 자랑스러웠다.

 
                              - 故 윤한덕 센터장의 직장 동료 윤순영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상황실장 -


윤 센터장의 유족들은 그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가 혼자서 너무 많은 짊어지려고 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직하고 정도를 걷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늘 옳은 일이라고 여기면서 지지했다. 함께 한 시간은 적지만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아버지께 가끔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아버지가 한 말은 ‘넌 크면서 느끼는 생각이 나랑 똑같아, 닮았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가장 닮은 사람이기에 아버지가 가족에게 늘 미안한 마음 가진 것을 알지만 이제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 아버지와 모형 비행기를 만들던 날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 아버지의 가시는 길을 위로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며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故 윤한덕 센터장의 큰 아들 윤형찬 군 -

 

“일주일에 15분 정도 남편을 봤다. 집에 안 올 때는 옷을 싸서 병원으로 갔지만 바쁜 남편은 속옷 받으러 나올 시간도 없어 그냥 차 안에 넣어 두고 오곤 했다. 남편은 너무 힘들게 일했다. 스트레스는 많고 잠은 늘 부족했다. 숨진 남편을 처음 봤을 때 결국 과로해서 이렇게 됐구나 싶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남편이 힘들어 한지는 한참 전부터였다. 사직서도 몇 번 썼지만 본인이 그만두면 이 일 자체가 무너진다고 여겨 매번 마음을 다잡았다. 응급의료 분야는 일이 많고 힘들어 의사들이 기피한다고 들었다. 짐을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좀 수월했을텐데 그 부분이 많이 안타깝다”   

- 故 윤한덕 센터장의 아내 민영주 씨-


임세원 교수와 윤한덕 센터장의 사망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숙제를 던졌다. 임 교수의 사망으로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복지부는 지난해 발표한 응급실 폭력방지 대책을 포함한 의료기관 폭력 방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윤 센터장은 의료인 근로시간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의협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준법진료 선언은 물론 병원 노조 설립 논의도 윤 센터장 사망을 계기로 불이 붙을 전망이다.

두 의사의 죽음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잊혀 진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은 “추모는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두고두고 고인을 기리고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와 함께 중요한 것은 제도 개선이다. 제 2의 임세원 교수, 윤한덕 센터장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진료환경, 과로하지 않을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두 의인(義人)을 잃은 의료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