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P(Early Retirement Program). 최근 다국적 제약업계에 확산되고 있는 구조조정 방식. 일명 ‘회망퇴직’이라 불리는 이 제도에 직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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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적 해고’가 아닌 ‘자발적 퇴사’를 표방하기 때문에 표면적 어감은 거부감이 덜하지만 구조조정의 일환인 만큼 직원들 입장에서는 결코 달가울리 없는 제도다.
실제 지난해 말 사노피-아벤티스에 이어 GSK, 바이엘, 아스트라제네카 등 유수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잇따라 ERP를 진행, 내부적으로 적잖은 동요가 일기도 했다.
이들 제약사는 최소 수 십명에서 최대 백여 명에 이르는 신청자를 받아 사직 처리를 완료했다. 물론 퇴직자에 대한 대체인력 충원은 없었다.
아무리 신청에 의한 퇴직이라고는 하지만 직원들은 ERP 공지가 날 때마다 압박감을 떨칠 수 없는 처지다. 특히 장기근속자의 경우 심리적 부담은 더 할 수 밖에 없다는게 중론이다.
그러나 오히려 ERP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직을 결심했거나 결정한 직원들. ERP는 이들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각 회사마다 미미한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희망퇴직에 따른 보상은 3년에서 최대 4년 치 연봉이며, 장기퇴직금은 별도로 부여된다.
때문에 이직을 결심했거나 결정된 상태에서 ERP가 진행될 경우 정식 퇴직금 외에 수 억원의 보너스를 더 받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직 예정자들은 오히려 ERP를 기다린다. 실제 ERP 신청자 중 이직 예정자들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모든 이직 예정자들에게 달콤한 ‘꿀 보너스’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시점이 맞아 떨어져 ERP를 신청하더라도 회사에서 반려할 경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꼭 필요한 재원을 잃고 싶은 회사가 없는 만큼 ERP 신청이 퇴사로 이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ERP 특혜를 누리려다 이직도 실패하고, 그 동안 쌓아온 충성도에 금이 가는 위험도까지 감수해야 한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ERP는 구조조정이며, 직원들이 압박 받을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직원마다 명암이 엇갈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이미 갈 곳이 정해진 직원이 ERP를 통해 3~4년치 연봉까지 받는 모습을 보며 적잖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