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대학병원의 경쟁적 분원 설립이 지역의료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2차 병원 및 병상 수 조정을 위한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야 한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28일 의협회관에서 열린 '적정 병상수급 시책 마련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힘줘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표한 'OECD 보건통계 2023' 분석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1년 병원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로, 이는 OECD 평균 3.5개보다 2.9배 많았다.
급성기 치료 병상 수 역시 인구 1000명당 7.3개로 OECD 평균의 2.1배 수준이다. 한국의 전체 병상 수 및 급성기 치료 병상 수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반면, 병상이용률은 낮고 재원일수는 길었다.
수요에 비해 병상이 과잉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재 수도권에만 9개 대학병원이 11개 분원을 설립한다. 11개 분원 6000여 병상 증설 시 연간 요양급여비 2조4810억원이 추가로 발생한다.
이상운 부회장은 "2028년이 되면 수도권에 6000병상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역 간 병상 수급 불균형은 더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통계청 종별 병상수 추이 자료를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8년 4만6188개에서 2022년 4만8057개로 연평균 1.3%의 증가율을 그리고 있다.
종합병원 병상 수 역시 오름세다. 같은 기간 10만7290개에서 11만1005개로, 연평균 1.6% 증가 추세다. 반면 의원급은 2018년 6만2863개에서 2022년 5만3350개로 연평균 5.7% 감소하고 있다.
"지역필수 의료체계 악화되고 의료인력 쏠림현상은 더 심화"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이 추진될 경우 3가지 문제점이 야기될 것으로 분석된다. 의료전달체계 붕괴 및 지역필수 의료체계 악화, 의료인력 쏠림현상 심화 등이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은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으로 2차병원과 동네의원이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장비나 시설 면에서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 폐업하는 의료기관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대학병원 분원마다 의료인력 확보가 필요해 충청권, 호남권, 경상권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력까지 무분별하게 흡수할 것"이라며 "지역 간 의료격차를 심화하고,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부추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현상과 열악한 지역의료 인프라로 인한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심화되고, 병상과 의료인력, 환자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유발해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유발할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의료가 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상급종합병원처럼 종합병원 신규 진입 제한해야"
따라서 의료계는 정부가 무분별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방지 및 적정 병상 수급 시스템 구축을 위해 적극적인 개입 및 통제에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부도 적절한 병상 공급을 위해 정책적 방향을 설정 중이다. 복지부는 병상 수급 기본 시책을 마련하고 있으면 이르면 8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이상운 부회장은 "중앙 정부가 병상 수급계획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이에 따라 종합병원 개설 허가를 내줘야 한다"며 "상급종합병원은 지정제라 이미 개입 중이지만 2차 병원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병상 수 조정이나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에 대한 병원계와의 사전 교감 여부에 대해 이 부회장은 "병원협회와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별에 따라 이견이 있어 병협 내부서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추진이 수도권 쏠림현상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필수 회장은 "의료자원이나 지역별 특성 등을 고려한 병상수급 기본시책 마련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하며,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충분히 논의할 구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은 수도권 병상 과잉 현상을 막는 게 급선무"라며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을 멈춰야 하며, 이후 병상 수나 인력 등 의료 자원 재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